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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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폭포/ 이 형기

2008.04.01 02:00

정문선 조회 수:80 추천:15

폭 포 - 이형기 -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을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시퍼런 칼자욱을 아는가. 질주하는 전율과 전율 끝에 단말마(斷末魔)를 꿈꾸는 벼랑의 직립(直立) 그 위에 다시 벼랑은 솟는다. 그대 아는가 석탄기(石炭紀)의 종말을 그때 하늘 높이 날으던 한 마리 장수잠자리의 추락(墜落)을. 나의 자랑은 자멸(自滅)이다. 무수한 복안(複眼)들이 그 무수한 수정체(水晶體)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맹목(盲目)의 눈보라 그대 아는가 나의 등판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시퍼런 빛줄기2억 년 묵 은 이 칼자욱을 아는가. - <적막강산>(1963)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서정적, 관념적, 심리적, 비극적 ◆ 표현 : 정교한 언어구사를 통한 존재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줌. 수미상관의 구조로 안정감을 획득함 자연적 소재를 관념화하여 표현함 사람이 아닌 자연이 주체가 되어 시상이 전개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그대 → 청자, 인간 * 나 → 주체인 산. 의인화된 표현 *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칼자욱 → 산의 한부분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모습 날카롭고 섬뜩한 느낌의 표현(폭포는 산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 존재의 고통을 감각화시켜 표현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비극성을 느끼게 해주고자 한 것. * 질주하는 전율 →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추락(속도감) * 단말마 →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 * 석탄기 → 고생대 중엽으로 이 시기 후반에 조산운동이 일어나 파충류가 출현하였음. * 장수잠자리의 추락 → 폭포의 낙하에서 연상된 이미지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 * 나의 자랑은 자멸이다 → 산 스스로가 품고 있는 폭포의 떨어짐을 자멸이라는 비극적 이미지로 표현 * 복안 → 곤충같은 절지 동물의 눈처럼 작은 눈이 여러 개 모여서 된 눈 * 맹목의 눈보라 → 바위에 부딪쳐 떨어지는 폭포의 무수한 물보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구절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 삶의 투영 * 2억 년 묵은 칼자욱 → 삶의 역정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고통의 멍에 폭포는 산에게 있어 오래된 상처이자 고통이다.(존재에 대한 시인의 비극적 인식) ◆ 주제 : 삶의 일상에서 느끼는 존재의 고통과 비극성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칼자욱(폭포)이 난 산(삶의 치열성) ◆ 2연 : 벼랑(절벽)이 있는 산 ◆ 3연 : 폭포의 낙하 ◆ 4연 : 폭포의 부딪힘 ◆ 5연 : 폭포에 대한 인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의 대상으로 채택된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대상은 단지 자연적인 소재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시킨 형상물이다.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이 아닌 '산'이며, 오히려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 청자인 '그대'가 되고 있다. 벼랑을 가로 질러 내리친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의 멍에가 되며, 여기서 시인은 삶의 일상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이라는 관념을 떠올리게 된다. 이 시는 정교한 언어 구사를 통해 일상적 삶에서 느끼는 존재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 시의 대상인 '폭포'는 산의 깎아지른 벼랑을 타고 흘러 내리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폭포'는 단순히 자연적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뛰어난 상상력에 의해 관념적인 이미지를 투사(投射)시킨 형상물이다. 또한, 이 시의 발화 주체인 '나'는 시인 자신이 아닌 '산'이며, 시인은 그 상대역으로서의 청자인 '그대'가 되어 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길게 내리친 / 시퍼런 칼자욱'의 모습은 주체인 '산'의 입장에서 보면, 지울 수 없는 고통의 멍에이며, 연속된 '벼랑의 직립'에서 '박살나는 맹목의 눈보라'를 피우며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현실적 고통으로 인해 끝없이 절망하는 실존적 존재인 인간 삶의 투영이다. 추락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한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또다시 '하늘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모습이 미약한 '장수잠자리'를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인간적 삶이 거세된 암담한 현실 속에서, 진실된 양심의 소리를 세차게 토해 내는 '깨어 있는 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김수영의 <폭포>와는 전혀 다른 '폭포'의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