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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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지비 2 / 이상

2008.04.01 10:17

정문선 조회 수:150 추천:32

지비(紙碑) 2 - 이 상 - 안해는 정말 조류(鳥類)였던가 보다 안해가 그렇게 수척하고 가벼워졌는데도 날으지 못한 것은 그 손가락에 낑기웠던 반지 때문이다 오후에는 늘 분(粉)을 바를 때 벽(壁) 한 겹 걸러서 나는 조롱(鳥籠)을 느낀다 얼마 안 가서 없어질 때까지 그 파르스레한 주둥이로 한 번도 쌀알을 쪼으려들지 않았다 또 가끔 미닫이를 열고 창공(蒼空)을 쳐다보면서도 고운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 않았다 안해는 날을 줄과 죽을 줄이나 알았지 지상(地上)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비밀한 발을 늘 버선 신고 남에게 안보이다가 어느날 정말 안해는 없어졌다 그제야 처음 방안에 조분(鳥糞) 내음새가 풍기고 날개 퍼득이던 상처가 도배 위에 은근하다 헤뜨러진 깃부시러기를 쓸어 모으면서 나는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을 얻었다 산탄(散彈) 아아 안해는 조류이면서 염체 닫과 같은 쇠를 삼켰더라 그리고 주저앉았더라 산탄은 녹슬었고 솜털 내음새도 나고 천근 무게더라 아아 - <조선중앙일보(1936)>-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초현실주의적 ◆ 표현 :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지비 → 이상이 만든 언어(조어)로, 석비(石碑)의 '돌'을 '종이'로 환치한 것. 이로써 '돌로 된 비석(기념, 紀念)'에 대한 반어적 의미와 태도를 보여준다. * 반지 →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약과 구속을 상징 * 헤뜨러진 깃부시러기 → 흐트러진 깃털 * 산탄 → 폭발과 동시에 많은 잔 탄알이 퍼져나가는 탄환으로, 가까운 거리의 새나 짐승을 잡는데 이용됨. ◆ 주제 : 사회적 관습과 봉건적 억압이 부른 비극 아내(새) : 창공, 날개, 고운 목소리 → 자유를 향한 비상 : 반지, 산탄, 닫과 같은 쇠 → 억압과 구속 [시상의 흐름(짜임)] ◆ 1 : 새장에 갇혀 있던 안해 ◆ 2 : 구속과 억압 속에서 힘들게 살다가 죽은 아내 → 쌀알을 쪼으려 하지 않음. 창공을 보면서도 고운 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 않음. 비밀한 발을 남에게 보이지 않음. ◆ 3 : 죽은 후에야 알게 된 아내의 상처와 고통 → 날개 퍼덕이던 상처 녹슨 산탄 천근 무게의 쇳덩이를 삼켰던 안해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먼저 아내를 조롱(새장)에 갇혀 있는 새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 새는 날개를 달고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아내는 본질적으로 한 남자에 종속된 처지 이전에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고 싶은 존엄한 존재이다. 그런 아내가 화자에게 시집와 살림살이에 시달리며 많이 수척해졌다. 아내는 자유를 희구하지만 아내를 옥죄는 건 반지, 즉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약이다. 아내는 외출하려고 화장을 할 때도 자신이 조롱(새장)에 갇힌 구속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아내는 쌀알을 쪼려 들지도 않고 창공을 향해 고운 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도 않고 지상에 발자국을 남기지도 않을 정도로 힘들게 살다가 죽었다. 화자는 아내가 죽은 뒤 방 안에서 풍기는 조분(새똥) 냄새를 맡고 비로소 아내가 새장에 갇힌 채 자유를 빼앗기고 구속당한 새인 줄을 알았다. 화자는 아내가 죽은 뒤 방안을 수습하다가 아내가 자유를 향해 비상하지 못한 것은 사회적 구속인 산탄 총알을 맞고 무거운 쇠를 삼켰기 때문인 걸 알고 회한에 잠긴다. 이 시는 '창공, 날개'로 상징되는 자유를 향한 비상과, '반지, 산탄, 쇠'로 상징되는 사회적 억압을 대조적으로 놓아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봉건적 가부장제 하에서 억압과 인종의 세월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던 이 땅의 '아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한편 아내를 여성에게 가해지는 봉건적 억압의 희생물로 읽지 않고 사회적, 제도적 억압에 의해 질식한 시인 자신의 영혼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상의 소설 <날개>를 참고하면 이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