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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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작은 짐승/ 신석정

2008.04.02 08:11

정문선 조회 수:150 추천:24

작은 짐승 - 신석정 - 난(蘭)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蘭)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난(蘭)이와 내가 푸른 바다를 향하고 구름이 자꾸만 놓아가는 붉은 산호와 흰 대리석 층층계를 거닐며 물오리처럼 떠다니는 청자기빛 섬을 어루만질 때 떨리는 심장(心臟)같이 자지러지게 흩날리는 느티나무 잎새가 난(蘭)이의 머리칼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난(蘭)이와 나는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말없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었다. - <촛불>(1939)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낭만적, 목가적, 서정적 ◆ 표현 : 반복과 비유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작은 짐승 → ①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주고 있는 대자연의 품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부담없게 느껴지는 심상 ② 일체의 인위적 꾸밈이나 지식, 의도, 계산 따위를 모르는 천진난만한 순수성 ③ 자연의 일부분으로 동화되어 있는 생명체로서 자신을 느끼고 있는 시적 자아의 마음 ◆ 주제 ⇒ 근원적 평화와 순수성의 세계(어린시절)에 대한 회상과 동경 자연에서 안식하는 자의 꿈 ◆ 시적 자아 : 어린시절의 순진한 동경과 자유로움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으면서, 거칠고 메마른 세계에서 숱한 갈등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산에서 바다를 보던 난이와 나 ◆ 2연 : 작은 짐승처럼 바다를 바라보던 난이와 나 ◆ 3연 : 자연에 동화된 난이와 나 ◆ 4연 : 순진하고 착하기만 했던 난이와 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일체의 간섭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연 속에 동화되어 살고 싶어하는 도교적 사상이 간접적으로 표출된 작품으로 '난이와 나'라는 순수한 인간의 전형을 '작은 짐승'으로 표현하여 근원적 평화와 절대 순수의 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시인이 그리워하는 것은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시절이다. 그러므로 전 시행을 '-었(았)다'라는 과거 시제로 씀으로써 시인이 그리워하고 있는 어린 시절과, 시인이 현재 처해 있는 현실 상황과를 대비시켜 그 동경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 곧 지금의 현실은 '난이와 나'가 누리던 평화와 행복이 모두 사라진 고통의 시대요, 따라서 '난이와 나'는 더이상 순하디 순한 '작은 짐승'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모진 세파 속에서 자신의 순수한 영혼이 세속에 물들어 버렸음에 가슴 아파하며, 높은 산언덕 느티나무 아래서 티끌 하나 없는 순진무구함으로 푸른 바다를 바라보던 옛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에 잠기어, 다시 한 번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시인의 마음, 바로 그것은 현대인 누구나 꿈꾸는 보편적 향수가 아닐런지. 또한 신석정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그 순수한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가 일제 치하에서 줄기차게 추구하던 이상향으로 그것은 다름 아닌 해방된 조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