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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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2008.04.02 10:24

정문선 조회 수:208 추천:26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시집 <우리가 물이 되어> (1986)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상징적, 의지적 ◆ 표현 : 미래 가정법의 문장 구조를 통해 소망을 극대화 함. 만남에 대한 소망을 물과 불의 이미지 대조를 통하여 형상화 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물 → 긍정적이고 생성의 이미지. '나'와 '너'를 '우리'로 합일시켜 주는 매개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삶의 소망. 화자의 감정이 전이된 객관적 상관물에 해당함. 합일, 생명, 정화의 이미지. * 가문 집 → 현대 사회의 인간적인 정이 메말라 버린 상황, 생명력을 잃어버린 현대사회를 상징. *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 → 물의 활기찬 생명력 * 죽은 나무 뿌리 → 근원적 생명력의 소진 *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 부드러움과 포용의 속성을 지닌 물의 모습. * 아직 처녀인 / 부끄러운 바다 → 순수하고도 새로운 세계 * 불 → 부정적이고 파괴적 이미지. 죽음, 파멸 등 바람직하지 않은 삶의 방향을 상징함. 서로 만나 대립하고 끝내 공멸하는 파괴적인 삶의 현실. 화자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고 하는 세계에 이르기 위해 거쳐가야 할 과정. * 그러나 지금 우리는 / 불로 만나려 한다 → 궁극적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갈등의 현실. *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 파괴되고 소멸되어 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보여줌. * 만 리 → 이상과 현실의 괴리 * 저 불 지난 뒤에 / 흐르는 물로 만나자 → 갈등을 극복하고 조화로운 만남을 가지자. *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 불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의지 * 넓고 깨끗한 하늘 → 화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를 상징함(완전한 합일과 생명력이 충만한 세계) '불'로 상징되는 모든 인간적 고뇌가 승화된 정신의 경지를 표상함. *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물의 순환 과정으로 볼 때 자연스러운 것임. ◆ 제재 : 물 ◆ 주제 : 완전한 조화와 합일을 통해 원시적 생명력을 회복하는 삶에 대한 희구 [시상의 흐름(짜임)] ◆ 1∼2연 : 물이 되어 만나고 싶은 소망 ◆ 3연 : 불로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물과 불의 대비) ◆ 4∼5연 : 물로 만나고자 하는 소망과 현실 극복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물의 원형적 이미지(신비 · 탄생 · 소생 · 정화 · 풍요 · 성장)를 채용하여 영원한 합일과 충만한 생명력을 희구하는 화자의 소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1연과 2연은 원형적 이미지로서의 물과 바다에 대한 끊임없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으며, 3연과 4연은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불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드러난 물의 이미지는 모든 인간을 포용하고, '죽은 나무 뿌리'를 적셔 생명을 소생시키는 의미들이 선택되고 있다. '물 → 비 → 강물 → 바다'로의 흐름을 이끌어 가면서 궁극적으로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다다른다. 여기서 바다는 모든 생의 어머니요 영원의 신비와 무한성이라는 원형적 이미지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화자는 곧바로 그 바다로 지향하지는 않는다. 3연과 4연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불로 만나려 한다'. 그것은 바다로의 지향이 그만큼 어렵고 숭고하다는 인식과 더불어 물이 되어 만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에 대한 자각이다. 화자는 그 과정을 불의 이미지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3연의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다는 표현은 세상의 온갖 것들을 모두 태워 버리고 대승적 견지에서 남과 나가 함께 조화와 합일의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소망의 모습이다. 따라서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를 정열과 욕망으로 만나려 하지 않고 '저 불 지난 뒤에/흐르는 물로' 만나자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은 흐르는 물로 만나기 위해 현세에서의 모든 부조화와 욕망을 제거하는 매체로 제기된 것이다. 결국 '불'을 통해 현세에서의 온갖 부조화와 욕망을 깨끗이 태워 버리고 마참내 '흐르는 물'로 만날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넓고 깨끗한 하늘'은 곧 완전한 합일과 충만한 생명이 넘치는, 흐르는 물이 되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창조적 공간을 상징한다. 이 시에는 현세에 대한 허무의식도 다분히 깔려 있다. 그렇다고 현세를 거부하고자 하는 도피의식을 드러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현세를 보듬어 안고 영원한 물의 세계로의 소망을 다지는 화자의 자정(自淨)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시는 나날이 원자화되어 가는 오늘의 메마른 현실을 문제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섬세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정서적 공감을 통한 참된 인간성의 회복이야말로 가장 적극적인 대응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