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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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2008.04.03 00:51

정문선 조회 수:264 추천:63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 <월간중앙>(1981)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낭만적, 현실비판적, 풍자적 ◆ 표현 : 대조적인 상황 설정(새↔우리)으로 암울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함.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어조 반어적 표현을 적절히 구사하여 절망적인 상황을 노래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하는 우리 → 권위주의와 엄숙주의가 팽배하던 당대의 상황이 연상됨. 군사 독재 정권 아래에서 맹목적인 삶을 부동 자세로 취하고 따라야 했던 당시 민중들의 모습 표상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요받았던 민중들의 모습 * 애국가 가사(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냉소적 현실 인식을 드러내는 비극적 아이러니로 사용됨. * 을숙도 →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 * 새 → 이러한 현실 세상을 철저히 거부하는 극적 대상물로 볼 수 있음. 즉, 새들은 인간들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을 비웃으면서 자기들만의 세상을 향해 세상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 극적 효과를 자아내는 표현 자유를 구가하는 새들의 울음 * 세상 밖 → 자유와 평화가 보장되는 유토피아적인 이상향 * '주저앉는다'의 이중적 의미 → 가능성(자유는 다른 곳이 아닌 이 땅에서 획득해야 할 문제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행위) 소망의 좌절(작은 소망마저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냉혹한 독재 현실과 그로 인한 극도의 좌절감과 허무감에서 비롯된 행위) ◆ 주제 : 암울한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허무 의식 [시상의 흐름] ◆ Ⅰ(1~2행) : 애국가를 경청하는 우리 ◆ Ⅱ(3~10행) : 새들의 자유로운 비상 ◆ Ⅲ(11~끝) : 이상의 추구와 좌절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1980년대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대표적인 시다. 이 시는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애국가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짧은 순간의 묘사를 통해, 80년대의 폭압적 현실상황에 대한 환멸과 극도의 좌절감을 풍자적 수법을 통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시의 공간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불꺼진 캄캄한 극장'은 암흑처럼 어둡고 침침한 암울한 현실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화면에 비치는 '새떼'들의 자유로운 비상을 바라보면서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잠깐이나마 가져보지만, 애국가가 끝난 후에는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어진다. '새'와 '우리'의 대조적인 상황 설정이 돋보이기도 한다. 즉, 새는 비상하는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이 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다가, 결국 새들처럼 세상 밖 어딘가로 떠나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