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는 성형 불가능한 곳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소리 성형을 위해 한국행'이라는 중앙일보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성대모사 같은 어떤 목적을 위한 변조가 아닌 한, 우리 일상의 목소리는 그 사람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의 얼굴이 연상되고 인품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목소리에 얽힌 조그만 상처를 가지고 있다. 오래전 시아버지 되실 분께 첫인사를 드린 후 전해 들은 이야긴즉, 모두 흡족한데 목소리가 별로라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들려준 남편의 그 말이 얼마나 섭섭하던지. 나보다 열 살 위인 시누이를 만난 후 섭섭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미술 교사였던 시누이는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면 늘 문제가 된다고 했다. OOO 선생 바꾸라니까, 학생인 줄 알고 대뜸 반말조로 나온다는 것이다. 유난히 앳된, 타고난 음성 때문이었다.
외모처럼 자칫 잘못 판단할 수도 있기에 섣불리 단정하면 안 되지만, 목소리로 사람을 가늠할 때가 있다. 예쁜 혹은 멋진 목소리만 여운이 남는 것은 아니다. 뭔가 의미 있는 말을 했을 때 매력 있는 목소리로 기억되기도 하고, 얼굴도 모르는 광고 속의 목소리에 끌리기도 한다.
광고를 듣다 보면 세련된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알량한 내 주머니를 털어갈 것 같아 경계심이 일 때도 한다. 어느 날 그냥 우리 이웃집 아줌마 같은 수더분한 중년의 목소리에, 약간 시골스러운 한국 이름을 한국식으로 밝히며 자신의 비즈니스를 광고하는 한 음성이 귀에 들어왔다. 그녀의 평평한 억양과 한국식 이름 OOO가 뜬금없이 생각나 나도 참 별일이야, 혼자 웃곤 했다.
지난달 중순 신문을 펼치다가 '30년 품은 꿈 드디어 무대에'라는 제목 아래 귀에 익은 이름이 눈에 띄어 설마 하며 읽었다. 내 입에 웃음 바람 넣어주던 바로 그 광고 속의 여인이 틀림없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며 "어린 시절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노래를, 성악을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마음속에는 열정을 항상 품고 음악을 즐겨들었다. 이제서야 무대에 선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자녀들 다 키워놓은 후 공부를 시작했고, 독창회에 도전한다는 내용이었다.
꿈을 향해 가고 있어 목소리 안정되고 한국 이름 당당했구나, 대단한 것을 알아차린 듯 즐거웠다. 시간이 흐르고 오늘 '목소리 성형' 기사를 읽으며 광고 속 그녀 목소리를 다시 떠올린다. 생각이 신선하면 목소리도 생각에 맞게 전해지는 모양이다.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조잘대는 목소리에는 달콤한 향기가 느껴진다.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의 목소리에는 꽃봉오리의 신비와 달빛의 우수가 느껴진다. 청년, 중년, 노년, 우리 몸의 때에 맞게 목소리도 나이 들어간다. 형체는 없지만, 우리 몸에서 가장 잘 보이는 부분인 목소리, 내 속에 무슨 생각을 집어넣어야 할지, 그것이 숙제인 것 같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6.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