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연재 / 백한 번째 편지 (연재 캐나다 1 - 5 )
2016.08.11 21:49
7월 5일에 시작하여 8월 6일까지 10회에 걸쳐 올릴 예정입니다.
매주 두 번, 화요일과 토요일에 올라가오니 많이 읽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살림하시랴 어느 짬에 그 많은 소설들을 쓰셨는지 경이롭습니다.
가사노동 분담, 일테면 설거지 담당 하나만 해도 매 끼 1시간씩 하루 3시간이 날라가고
그러다 보면 옹근 시간이 어려워 글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업작가처럼 좋은 소설 많이 쓰셨음에 경의를 보냅니다.
편지 하니까 사연이 묻어 나올 얘기군요. 기대와 함께 감사합니다.
어디 살림만 했나요? 30중반부터 50중반까지는 완전 풀타임으로 일도 했어요.
직장을 그만둔 후에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쏟아져 나올 때는 어찌나 줄줄 잘 나오는지 날밤을 꼬박꼬박 세웠지요.
지금은 어림도 없습니다. 체력과 능력이 딸립니다. 선생님, 늘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편지 한 장에 묻어 있는 사연"... 그 사연이 과연 어찌 풀릴까요?
하지만 반대로 자기는 왕년의 어느 길녀에게서 그런 편지를 받아 보길 은근쓸쩍 꿈꾸면서도 말입니다.
아무튼 무슨 사단이 일어날 조짐인지 여러 상상을 해 보며 다음을 기다립니다.
"왕년의 길녀"... 귀에 익은 여자입니다. 길녀라는 단어의 창시자가 강 선생님 맞지요?
자기는 "은근슬쩍 꿈꾸는 일"이면서도 아내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면 모든 남편들은 다 그럴까요?
"뿔따귀를 꿈틀거리고", 눈을 모로 새우고····. 등등. 여기 등장하는 남편처럼. 쪼잔하게.
근데, 사람은 왜 꼭 한 남자 또는 여자만 사랑해야 하는 건지?...
전 그 게 늘 궁금하고 못 마땅하던데...
만일 곤란한 사랑이 맘속에서 일면 이성으로 감정을 꾹꾹 눌러 죽여버리는 것이 상책일 겁니다.
배우자가 눈치 채지 않게. 그리고 제 3의 인물도 눈치 채지 않게.
이런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소설을 쓰느냐고요? 고리타분하게. 누가 저보고 그랬어요.
글쎄요. 소설은 창작이니 가능한 것 같아요.
다들 모여 앉아 선배님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찌 반전이 시켜졌나 지캬봐 주세요.
하지만 이런 골빈 남자가 이 소설에 등장합니다. 소설을 완전 무에서 창작으로 완성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사실을 뼈대로 해야 쓰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이 골빈 남자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선생님 상상에 맡깁니다.
그것도 아무 반응도 없던 여자를····.
부부의 갈등이 어찌 엮여지는지 우리 한 번 따라가 봅시다.배
제 2회 “뭐? 내가 꼬리를 쳤다고? 무슨 말을 그딴 식으로 해? 내가 그런 여자로 보여?”
정말 기가 막히고 환장을 할 노릇이다. 김동추한테 꼬리를 쳤다니····. 편지 백 통이 날아든 기간 동안 두어 번인가 그가 집으로 찾아와 만난 적은 있으나, 손도 한 번 안 잡아본 사이다. 그날 밤, 옥희는 울고불고 소동을 벌였다. “날 의심하면 자기랑 살 수가 없으니 이혼하자”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눈이 퉁퉁 부어 붙어버릴 정도였다. 나중엔 남편이 아내를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 무마가 됐었다. 김동추를 “미친 놈, 골빈 놈”이라고 퍼부으면서 화살의 방향을 그에게로 돌렸다.
사실 그 당시, 옥희는 김동추의 편지를 은근히 엔조이했다. 그의 글 솜씨는 혼자 보기 아까운 문학 작품이었다. 그것은 사랑을 읊은 긴 서사시였다. 음률까지 내재된 참말로 아름다운 서사시라 책으로 묶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무슨 말을 썼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면서 “이거 미친놈 아냐” 하고는 뜯지도 말고 없애버리라는 등, 도로 돌려보내라고 성화를 했었다. 그러나 식모언니가 받아두었다가 어머니 몰래 옥희한테 전해주었고. 옥희는 꼬박꼬박 뜯어서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의 편지를 기다렸다.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설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어김없이 배달되는 편지가 건너뛰기라도 하면 ‘왜 편지가 안 오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의 편지가 왔을 때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었나 하는 마음이 앞서 봉투를 여는 손이 급하게 움직였다.
그는 항상 목요일에 편지를 썼다. 목요일은 “나의 천국”이라고 표현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편지에는 어김없이 일련의 숫자가 적혀 있는 것이다. 그것은 페이지 번호가 아닌 편지의 횟수 번호였다.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그 번호는 70, 80 그리 고 90이 넘었고, 드디어 100을 마지막으로 김동추의 편지는 오지 않았다. 백 통을 채우려고 작심을 했던 것일까?
남편은 몇 줄 안 되는 편지를 요리조리 훑으며 빈정거렸다.
“글씨가 개발나발이군.”
옥희가 보기에도 글씨체가 예전과 같지 않았다. 필체도 나이 따라 변하는 것인지 옛날처럼 반듯반듯하지가 않고 힘없이 구부러져 있었다. 초청장에 분명히 쓰여 있는데도 남편은 달력을 힐끗 쳐다보면서 얼굴을 있는 대로 다 찡그리고 다시 확인을 했다.
“7월 30일이라····. 아직 3주 남았군.”
그는 3주 동안에 취할 무슨 행동이나 구상하듯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다음,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거칠게 말했다.
“도대체 이 새끼가 주소는 어떻게 알았지?”
어느새 김동추가 이 새끼로 호칭이 되었다. 그런데 옥희는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왜 멀쩡한 사람을 새끼라고 해요?”
김동추를 두둔해서 한 말은 절대 아니다. 평상시에도 이 새끼 저 새끼를 남발하는 남편에게 늘 말버릇 좀 고치라고 했었다. 새끼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그녀의 반응이었다.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왜? 옛날 애인보고 이 새끼라고 하니 기분이 쓰라려? 같은 엘에이 바닥인데 만나면 될 걸, 무슨 편지질이야.”
그리고는 옥희가 반박할 새도 없이 “아참! 그 새끼 편지 쓰는 거 좋아하지. 미친놈, 요새 무슨 회갑잔치야?” 하더니 진짜로 복통 터지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맹세까지 한 걸 보니, 둘이서 죽자사자 했구먼. 그래놓고 뭐, 그 새끼 혼자서 편지질 했다고?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둘이 사귀다가 헤어지면서 무슨 맹세나 한 것 같은 애매한 표현법을 써, 옥희도 불쾌한 건 사실이었으나 남편이 막상 그 따위로 나오니 전혀 생각지도 않은 뚱딴지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만나면 될 걸” 하는 말에 은근히 복선이 깔려 있어 더 그랬다.
“그래. 죽자사자 했다. 왜? 결혼 전 일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당신은 연애 안 했어?” 두 사람의 언성이 차츰차츰 높아졌다. “아---. 이제야 실토를 하는구나. 나만 손해 봤네. 나는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결혼한 사람이야..”
순간, 번쩍하고 옥희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뭐야? 연애 한 번 못 해봤다고? 거짓말을 하려면 좀 들어 먹히게 하라고. 어쩜 그렇게 새빨간 거짓말을 해? 내가 증거를 쥐고 있는데도?”
“증거? 무슨 증거? 대봐. 대봐..”
“정말 대봐?” <계 속> |
짧은 카톡으로 나, 좋아해? ㅇㅇ, ㄴㄴ 하는 식의 대화를 하는 요즘 세대들에겐 그야말로 미이라가 된 시절의 이야기겠지요?
그래도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문득 유치진 시인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가 생각나는 저녁입니다.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네요. 과연 동추의 초대에 옥희 아씨가 응할 것인지...
김동추는 절루 가랍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더 절절 했을까요?
그리고 그 편지들을 서간집으로 묶어 출간을 한 이영도 시조시인. 그가 떠난 지 한 달 만에.
청마로부터 연서를 받은 다른 여인들이 있어 더 서둘러 첵을 냈다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런 경우, 청마의 부인과 가족들은 어땠을까요?
아무튼 김동추의 편지 백 통이 40년 후에 과연 효과를 발생할 수 있을지 다음 이야기에 귀기을여 주세요.
개인의 연서를 고인의 허락도 없이 출간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여겨지네요.
고인이 살아 있을 때 세상에 그 편지를 공개할 의도나 용기가 없었다면 그대로 묻어두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러나 청마 시인의 시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어릴 적부터 즐겨 읽던 시에요.
그래도 손편지를 쓰던 시절엔 낭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스물 아홉에 청상과부가 되어 고귀하고 기품있게 한 마리 학처럼 살던 이영도····.
첨에는 첨마의 열애에 끄떡도 안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만 넘어갔어요.
편지가 100통을 넘어 한 1000통 왔었다면 옥희도 넘어갔을까요?
남자가 여자 하나를 낚으려면 얼마나 발버둥 쳐야 하는 지를 정작 여자들이 모르데요.
상민 씨도 그래서, 부러워서,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찻집에서 남자 하나랑 만나고 있는데, 저 쪽 코너 의자에 여자 하나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어요.
은은한 불빛 아래 누구에게나 눈에 확 뜨일 수 있는 모습으로.····. 그게 입질을 보내는 건가요?
그때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5분 안에 저 여자 낚을 수 있다고요.
맞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지요. 그래야 소설이 되지 않겠어요?
옥희 남편, 참 쪼다 남자입니다.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가지각색의 남편들이 존재하는 세상입니다.
객지에서 또 뵙네요.
남편이 여자가있고, 질투하고... 젊고, 싱싱하네요.
질투 할 남편이라도 있었으면......ㅎㅎㅎ
그림 써 주어 영광굴비입니다.
남편의 여자? 젊고 싱싱하니까 질투도 가능하겠지요?
근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60이 넘었는데도 편지 한 장 가지고 그 야단을 할까요?
60대는 아직도 젊은 나이인가요? 글세요. 지금은 100세 시대이니까요.
저 같으면 그런 편지가 한 장 날아와도 아무치고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림을 사용하게 해 주셔서 제가 감사하지요.
맡아놓았던 선생님 책을 열흘 전쯤에서야 강선생님께 배달했습니다.
죄송해요.
옥희 이야기보다 남편과 영선이란 여자분 이야기가 더 재미있네요.
하필이면 주인공 여자 이름이 옥희일까요? 영선과 이름이 바뀐 건 아닐테지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주 무대가 돋보이기 위해 설치해 놓은 곁다리 장치에 관객의 시선이 더 끌리면 안 되는데 ····.
곁다리 장치는 부부의 갈등을 위한 양념에 불과합니다.
우선은 모면을 하고 보자는 심뽀입니다. 빛좋은 개살구라면 큰 일인데요. 옥희가 걱정이에요.
4회
그날 밤, 옥희는 곁에서 곤히 자는 남편의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져 좀처럼 잠을 이룰 수 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먼저 물어볼까 하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으나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들었다는 사실도 부끄럽고 등등, 모르는 척하는 것이 낫겠다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다. 남자에게 과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하고 애를 쓰며 마음을 꾹꾹 눌렀다. 또한 말해봤자 남편에게 박영선이를 일깨워 주는 결과를 낳을 테니 그녀한테 플러스가 될 일은 전혀 없다.
진짜 알맹이는 쏙 빼놓고 중학교 때 한 여학생 때문에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아내로부터 편지 백 통 이야기를 끄집어낸 그 술수가 참 대단했다. 지나친 표현이 될지 모르겠으나 남편은 여자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예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할 줄 아는 남자다. 사소한 일에도 일일이 신경을 써주며 아주 자상하게 옥희를 대해 준다. 자상한 성격이 가끔은 쪼잔하게 변모를 해버려 탈이지만 말이다.
데이트할 때, 그는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유머로 옥희를 아주 재미있게 해주었다. 정말 다방면으로 아는 것이 많아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옥희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찌나 웃기는지 웃기도 많이 웃었다. 만나면 편안하고 좋았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그녀는 연애 한 번 못 해보고 그를 만난 지 3개월 만네 약혼하고 그 두 달 후에 결혼을 했다. 2년 여 동안 백 통의 편지를 보낸 김동추에게는 끄떡도 안 했는데 그에게는 몇 달도 되지 않아 좋아하는 감정이 싹 턴 것이다. 옥희는 자신을 만나기 전의 남편 나이를 거꾸로 세면서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불쾌감에 가슴이 답답했다. 박영선뿐이 아닐 것이다. 옥희한테 적극적으로 다가온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 여자들을 사귀었을 것이고, 또 그들에게 무척이나 살랑거렸을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물론 박영선이한테는 두 말 할 나위도 없겠지. 맘속으로라도 남편에게 복수하고 싶어 다른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아무런 추억 거리가 없는 옥희다. 있다면 그것은 김동추의 편지 백 통뿐이다. 사실, 김동추 외에도 옥희의 주위에서 서성이는 남자들이 더러 있었다. 허나 그녀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눈을 돌려 봐도 괜찮은 남자가 한 명도 없어 차가운 겨울바람으로 싹싹 쓸어냈다. 남자들이 만나자고 하면 그냥 만나주고, 저녁도 얻어먹고 영화도 보고 등등, 심지어는 옷까지 얻어 입고하는 그런 친구들을 옥희는 아주 추하게 생각했다.
“꼭 좋아하고 사랑해야만 만나니? 그냥 재밌잖아. 이런 남자 저런 남자 만나봐야 결혼 상대도 잘 고를 수가 있는 거야. 머리 좋은 애가 왜 그쪽으론 그렇게 맹탕이니? 참 답답하다 답답해. 너처럼 그렇게 도도하게 구는 거, 남자들이 좋아하는 줄 아니? 천만에 말씀. 도망가기 딱 안성맞춤이지.”
어느 친구가 한 말이다. 지나고 보니 그 친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왕 의심을 받을 바에는 놀기라도 했더라면 억울하지나 않지. 생각할수록 분하고 원통했다. 남편의 말에는 최근에 김동추를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내포되어 있어 더 억울했다.
35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하고도 아내가 어떤 여자인지를 모른단 말인가?
따지고 들면 남편보다는 김동추가 훨씬 더 유리한 결혼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김동추와 집안끼리 잘 안다는 같은 과 친구인 김동미가 그랬다. 그는 기가 막히게 머리 좋은 수재이고, 대대로 내려오는 땅 부잣집 외아들로 부모는 둘 다 대학교수라는 것이었다. 부모님도 아주 좋은 분들이고, 김동추 또한 한없이 착하고 순수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외모는 너무나 볼품이 없었다.
김동추가 파트너로 지정이 되었을 때, 옥희는 아이구 아니올시다. 하고 실망이 컸었다. 체격이 왜소하고 키가 아주 작았기 때문이다. 유난히도 하얀 얼굴이 어찌나 창백해 보이는지 어디 요양소에서 갓 나온 환자 같았다. 거기다가 그는 하얀 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맨 처음 편지가 계속 학교로 배달이 되었을 때, 오죽하면 친구들이 하얀 멸치라는 별명을 붙였을까? 거기다가 꾸어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통 말을 안 해 정말 재미없고 지루했다. 수재만 모인다는 일류 공대 학생인데도 옥희의 눈에는 그가 바보처럼 보였다.
한데 어떻게 그런 글귀들이 나오는지 옥희는 편지를 읽을 때마다 감탄을 했다. 외모에서부터 선입감을 가졌기에 그의 진가를 몰라본 것일까?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 옥희는 참말로 철이 없었다. 키 작은 남자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은근히 외모를 중요시했다. 언젠가 김동추가 집으로 찾아와 대문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공교롭게도 어머니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무슨 남자애가 그리도 비리비리하냐?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더라. 걔 어디 아픈 거 아니니? 나가서 돌려보내. 원 세상에, 널 처녀로 늙혔으면 늙혔지 저런 놈은 절대로 안 된다.”
물론 그는 옥희로부터도 문전박대를 당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안됐다. 김동미는 키가 작은 것이 당장은 흠이 되겠지만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잘 생각해 보라면서 옥희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우선 한 번 사귀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녀가 너무 속물 같아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으나 세월이 지난 후, 딸들을 시집보낼 때는 옥희 역시 속물이 되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든 동미가 참 대견스럽다. 대학 졸업 후, 어디 취직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가끔 서울엘 나갔었는데도 그녀의 소식은 바람결에도 들리지 않았다. 하얀 피부에 자그마한 옥희에 비해 그녀는 바짝 마른 몸매에 키가 아주 컸으며 체격 또한 큰 편이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는 늘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어떤 땐 슬퍼 보이기까지 했던 그 표정이 옥희의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계 속>
진부한 표현이지만 누에에서 비단실이 나오는 거 같아요. 지금은 소설연재를 하는 신문이 없어졌지만 젊었을 땐 그게 매일 기다림의 대상이었지요. 유일한 Entertainment 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합니다. 게다가 주제는 청춘남녀의 사랑이니 기차에서 내린 사람이 생각나고요. 손님이 와 있어 다음에 계속... 미국에서 손님이 와서 중단됐는데 연애라는 게, 제 생각엔, 첫눈에 반하는 맛이 있어야 하는건데 김동추가 그렇지 못했다면 잘 내려진 판단이었다고 봅니다. 세월의 풍화작용 때문에 다시 미화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결핍이 커진 시점에 와 있다는 얘기도 되는 거 같군요. ┗ 김영강 16.07.18. 03:26 감사합니다. 등단한 당시에는 어찌나 글이 쏟아져 나오는지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발표한 소설들이 거의 다 소설가라는 이름표를 단 초기에 쓴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두고두고 계속 들여다보며 교정을 합니다. 여기, 이 소설은 이번에 올리면서도 새 아이디어가 떠올라 손을 많이 댔습니다. 캐나다문사모에서 등을 떠밀어준 덕분입니다. 그렇지요? 옥희가 잘 판단 했지요? 첫눈에 아주 아니었으니까요. 강기영 16.07.17. 22:06 옥희 씨는 그렇다 치고, 상민 씨도 참 엔간 하네요. 우리 같음 아무리 왕년이라도 옥화 씨 같은 민속박물관 감은 그저 바라만 봐도 황송했을 텐데 그걸 난짝 하더니, 이제 와서 또 엉뚱한 트집이군요. 아무튼 두고 봐야겠네요. ┗ 김영강 16.07.18. 03:50 "옥희 씨 같은 민속박물관 감" 은 제 생각해도 "바라만 봐도 황송하니" 잘 모시고 살아야 한다. 인데, 모 평론가께서는 "민속박물관 감"이라는 똑 같은 말씀을 하시면서도 가정을 깨부셔서 옥희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는 뜻을 비치셨답니다. 그러면 독자들을 자극하는 더 재미있는 소설이 되겠지요? 불륜? 달샘 16.07.17. 01:04 나는 약간은 운명론자라...ㅎㅎ 사람은 미리 정해진 운명대로 산다고 봐요 저해진 각본에 무대에서 연극하는 일상... 틀리나요? 강선생님 방가와요. 잘 계시지요? 한번 뵐 기회를 놓지고 ... 이것도 운명일까요? ┗ 강기영 16.07.17. 05:11 달샘 선생님, 반갑습니다. 백복현 선생님을 통해서 작품집도 잘 받았고요. 만나 뵐 수 있다고 해서 문청시절처럼 두근거리기까지 하며 기다렸는데 아쉬웠습니다. 언젠가는 한 번 만나뵐 운명이 점지돼 있기를 기다리며 오래도록 건강히시기 바랍니다. ┗ 김영강 16.07.18. 03:53 제 소설을 통해 이렇게 서로들 인사를 나누니 흐믓합니다. 뵐 기회를 놓친 것도 운명? 맞아요. 다음에는 꼭 만나게 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여선 백복현 16.07.17. 03:27 저는 책 무사히 배달했습니다. ㅎㅎㅎ 지난 번에 오셨더라면 같이 얼굴을 보면서 정식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었는데... 그때 만났더라면.... 어떤 이야기가 전개되었을까요? 전 소설가가 아니니... 김동추에 대한 저의 선입견은 완전히 빗나갔군요. ㅎㅎㅎ 그가 어떤 인물일지 자꾸만 궁금해지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이곳은 선선한 초가을 같은 날씨로군요. ┗ 김영강 16.07.18. 04:40 네. 빗나갔지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느 독자는 김동추와의 로맨스를 기대하기도 했지요. '민속발물관 감'인 옥희가 차마 한눈을 못 팔겠지만 뭔가 마음의 변화는 있을 법합니다. 여기도 오늘 일요일은 화창한 날씨에 기후도 딱 좋습니다. 얼마 전에는 111도까지 기온이 올랐답니다. 물방울 16.07.17. 19:25 편지라는 것이 주는 오해라는 것이 있어요. 상상이 가미된. 우리들은 참 얼마나 자기 마음대로인지 듣고 싶은대로, 자기의 온갖 생각대로 만들어버리죠. 제 생각에 김동추는 키가 크고..........ㅎㅎ ┗ 김영강 16.07.18. 04:51 "김동추가 키가 크고" 잘 생기고 ····. 그랬담 얼마나 좋았을까요. 거기다가 부자고 또 머리 좋고. 독자가 자신의 생각대로 소설을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담에 선자 씨의 "백한 번째 편지"를 기대합니다. ┗ 김영강 16.07.18. 23:12 물론입니다. 더 열을 올렸을 게 뻔합니다. 그란데 이런 경우 남편들이 아내에게 목숨 걸었던 과거의 남자 외모를 궁금해 하는지요? 그리고 그걸 아내에게 물을 수도 있는지요? ┗ 김영강 16.07.19. 05:51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100% 공감이 갑니다. 이걸 어디 적당한 곳을 찾아 집어 넣고 싶은데, 괜찮지요? 어디가 좋을지 지금 찾고 있습니다. 한 서너 줄 정도로요. 아이디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선 백복현 16.07.19. 20:01 그야말로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백 한번째 편지가 옥희의 집안에 물결을 만들었네요. 사는 게 심심하고 지루할 나이에 옥희 부부에겐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알콩달콩 말꼬리를 잡고 사랑싸움을 하는 옥희 부부가 사랑스럽네요. ^^ 아직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은 옥희의 모습도 고와 보이고요. ┗ 김영강 16.07.20. 13:26 맞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너무 밍밍하게 사는 것보다 더러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겠지요. 말꼬리를 잡고 부부싸움 하는 것을 사랑스럽게 봐 주시니····. 그 마음이 참 예뻐요. 달샘 16.07.19. 23:25 약간 평범한 감은 있지만 술술 풀리는 것이 재미있네요. 옛날에 부잣집은 일하는 사람이 다 분담되었지요. 식모, 찬모, 젖이 부족한 마나님 대신 유모,밖에 심부름만 하는 언니, 정원가꾸는 아재,집사 등등.... 나는 남편의 질투가 귀엽네요. 담 회를 기다리며, ┗ 김영강 16.07.20. 13:33 남편의 질투가 귀엽다고 하시니····. 역시 해정 선생님이십니다. 옥희는 기가 차서 펄펄 뛰면서 쪼다 남편에게 대 실망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해정 선생님은 젊으셨을 때도 생전 부부싸움은 안 하셨을 것 같아요. 맞습니까? 물방울 16.07.20. 16:58 우왕 저는 부부싸움 보다 동미네가 더 짠합니다. 어쩐지 동자 돌림이다 싶었는데 동미씨는 마음이 넓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타고 났군요. 어쨋든 김동추 댁이 아조 부자였나봅니다. 옥희씨 정말, 뒤 늦게 사랑싸움에 왠 이혼을 들먹이는 것인지...... 진짜 심각하면 이런 말 못하죠. ┗ 김영강 16.07.21. 02:48 그렇지요? 동미가 참 짠하지요? 물방울님 말씀대로 동미는 참 마음이 넓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런 여자입니다. 마지막 회에 가서 그 내면이 드러납니다. 미리 암시를 주면 안 되는데····. 그래도 이 암시가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궁금증을 더 유발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글쓴이의 바램입니다. 옥희가 이혼을 들먹였다고 해서 진짜 이혼이 성립될 거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남편의 쪼잔함에 평생을 실망하고 살아 또 모르지요. 아닙니다. 옥희는 도저히 그러지 못하는 여자입니다. 이 소설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가족과 가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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