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버들 / 정목일

2016.08.24 07:20

박봉진 조회 수:108

           수양버들


                                     鄭 木 日

 

   여인이 홀로 가야금을 뜯고 있다.

진양조(調) 가락이 흐른다. 섬섬옥수가 그리움의 농현(弄絃)으로 떨고 있나보다. ‘덩기 둥, 덩기 둥.’ 고요 속에 번져 나간 가락은 가지마다 움이 된다. 움들이 터져서 환희의 휘몰이가락이 넘쳐난다.

   누가 촛불을 켜고 있다.

촛불은 마음 한 가운데 바람도 없이 파르르 떨고 있다. 촛불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나무. 뼈와 살을 태워 빛을 내리라. 촛불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떨어뜨린 촛농들이 움이 되어 방울방울 맺혀있다. 꿈의 푸른 궁전들이다.

   누가 잠들지 못하고 한 땀씩 수()를 놓고 있다. 바늘귀로 임의 얼굴을 들여 보며, 오색실로 사랑을 물들이면, 별이 기울고 바람도 지나친다. 모든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팔을 뻗히지만 그만은 임을 맞으려 아래로 팔을 벌린다.

   부끄러워서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방문 앞에 주렴을 드려 놓는다.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축축 늘어뜨린 실가지가 오선지 인양, 그 위에 방울방울 찍어 놓은 새싹 음표(音標)들엔 봄의 교향악이 은은히 흐른다.

   목마른 지각을 뚫고 솟아오른 분수이다.

오랜 침묵에서 말들이 터져 나와 뿜어 오른다. 어둠을 뚫고 소생한 빛의 승천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길. 닿기만 하면 굳게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막혔던 말들이 샘물처럼 솟을 듯하다.

   누가 보낸 것일까. 먼 데서 온 편지.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깨알 같은 연필 글씨. 금방 움에서 피어난 언어. 눈동자 속에 파란 하늘이 보이고, 따스한 체온이 느껴진다. 마음이 먼저 임에게로 달려간다.

   목욕하고 난 열 여섯 살 소녀가 활짝 웃고 있다.

긴 머릿결에 자르르 윤기가 흐르고 머리카락 올올 마다 사랑의 촉감이 전해온다. 실비단보다 부드럽게 치렁치렁 휘날리는 머릿결에서 연록의 향기가 풍긴다. 소녀의 미소가 번져 흐른다.

   이제 막 터져 나온 꿈 빛 목소리.

터질듯 부풀어 오른 가슴으로 새 봄을 맞아들이고 싶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
어제:
0
전체:
214,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