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서화 15

by 박영호 posted May 01, 200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우리의 서화 15

         해학과 중용의 미학

 

김홍도(金弘道)의 타작도(打作圖)

 

 

타작도(打作圖)는 수확기 농촌의 타작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마름(감독하는 사람)과 농민이 함께 화면에 등장하고 있지만
이들 사이에는 갈등의 그림자를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은 한국인이 지닌 해학 정신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해학 정신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화면에 표현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

   
경력 및 단원 풍속도첩

 

김홍도(金弘道, 1745-?)(우리의 서화 21.참조)

 

단원에 대하여는 "우리의 서화 21"에서  상세하게 소개 한 바 있으나 우선 그림감상을 위하여 살펴본다.

 

본관은 김해이며,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 단구(丹丘) · 서호(西湖) · 고면거사(高眠居士) · 취화사(醉畵士)· 첩취옹(輒醉翁)이다. 만호를 지낸 김진창의 증손자이자 김석무의 아들이다. 당대의 감식자이며 문인화가인 강세황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된 그는 강세황의 지도 아래 화격을 높였다. 강렬한 개성으로 독특한 경지를 개척, 한국적인 풍토 감각을 맑게 표현했고, 풍속화에 있어서는 해학과 풍자를 조화하여 서민적인 풍취를 잘 그렸다.

 

김홍도는 29세 때인 1773년에는 영조의 어진과 왕세자(뒤의 정조)의 초상을 그리고, 이듬해 감목관의 직책을 받아 사포서(司圃署)에서 근무하였다. 1781년(정조 5)에는 정조의 어진 익선관본을 그릴 때 한종유·신한평 등과 함께 동참화사로 활약하였으며, 뒤에 찰방을 제수 받았다. 이 무렵부터 스스로를 명나라 문인화가 이유방의 호를 따라 단원이라 불렀다. 산수, 도석, 인물, 풍속, 화조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당대부터 이름을 크게 떨쳤다.

〈타작도〉는 그가 그린 풍속화로서 《단원풍속도첩》(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 수록되어 있는 그림 중의 하나이다. 풍속화첩은 세로 28cm, 가로 24cm 크기로 수묵 담채로 그린 25장의 풍속화로 꾸며져 있다. 화첩에는 〈서당도〉 〈씨름도〉 〈무동도〉 등 우리가 익히 보아 왔던 그림들을 비롯한 조선 시대 서민들의 다양한 일상생활 모습이 실려 있다.

     
작품의 가치

 

김홍도의 풍속화에서는 신윤복의 그림처럼 우아한 매력이나 사랑스러운 감정 같은 것은 느껴볼 수 없다. 그의 풍속화의 주인공들은 예쁜 기생이나 멋있는 한량이 아니라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흰 바지와 저고리를 입은 평범한 서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윤복의 그림보다 더 한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김홍도는 투박하고 경직된 선묘를 사용하여 농민이나 수공업자들의 일상 생활을 담담하고 열린 마음으로 그렸던 화가이다. 그가 남겨 놓은 풍속화가 많지만, 그 중에서 〈타작도〉를 그냥 지나쳐 볼 수 없는 이유는 이 그림이 한국회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심성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해학과 중용의 정신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 분석

 

타작도〉는 수확기 농촌의 타작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개상에 볏단을 내리쳐 알곡을 털어 내고 있는
대여섯 명의 소작인들과,

그 뒤편에서 이들을 감독하는 마름이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농부의 표정들이 모두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어서 힘든 노동의 현장이 오히려 여유롭고 유연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타작도〉는 지주의 땅에서 소작하는 농민들과 이들을 감독하는 마름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린 그림이다. 마름이란 순수한 우리말로, 지주로부터 소작지의 관리를 위임받아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마름은 지주의 토지가 있는 곳에 상주하면서 추수기의 작황을 조사하고 직접 소작인들로부터 소작료를 징수하여 일괄해서 지주에게 상납하는 것을 주된 직무로 하고 있다.

 

그러한 직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마름은 지주의 입장에 서서 소작인들을 독려하기 마련이고, 소작인들은 피해 의식을 느끼며 싫든 좋든 간에 그의 요구와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소작인과 마름은 현실적으로 볼 때 상호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마름의 요구에 의해 알곡을 지주에게 바치고 나면 겨우 연명할 수 있을 정도의 곡식 밖에 가질 수 없는 소작인들로서는 마름이 놀고먹는 중간 착취자로 비칠 것이 당연하다.

 

〈타작도〉는 이처럼 신분적 갈등과 대립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한 장면에 그린 그림이지만 이 그림에서는 예컨대, 서구의 사실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현실 부정의 미, 또는 마르크스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격렬한 대립감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은 김홍도가 소작인들이나 마름의 어느 한편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런 현실적 갈등의 관계를 초월하는 해학과 중용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풍속화와 〈타작도〉

 

 

현재는 이미 설자리를 잃었지만 종전까지만 해도 일부 급진적인 대학생들을 비롯한 현실 참여 화가들에 의해 환영을 받았던 소위 민중 미술이라는 것이 유행했었다. 민중 미술이 평범한 농민·노동자들의 현실적 삶의 모습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만 보면 현대의 풍속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풍속화라고 하지만 민중 미술가들의 그림들은 조선 시대의 풍속화와 달리 현실의 모순과 계층간의 갈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의식화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같은 노동의 현장이라도 민중 화가들은 늙고 야윈 농부와 부티 나고 살찐 지주, 남루한 복장의 노동자와 거드름 피우는 자본가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대비시켜 그린다. 그렇게 함으로서 약자의 입장에 있는 노동자 ·농민들이 스스로 깨어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일에 적극 나서기를 은근히 기대해 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민중 미술가들이 그린 그림들은 순수한 풍속화라기보다 계몽 포스터의 성격이 더 강한 그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김홍도의 〈타작도〉는 갈등 관계에 있는 농부들과 마름을 그렸으되, 둥글넓적한 얼굴에 동글동글한 눈매를 지닌 농부들의 얼굴은 밝고 소탈하며,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마름의 표정 또한 덤덤하고 유연하다. 더구나 볏단을 내리치는 농부들의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이 연출하는 생동감 넘치는 화면 분위기는 신분간의 갈등이나 대립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여지를 주지 않는다.

 

〈타작도〉에서 풍겨 나오는 이런 밝고 건강한 기운은 김홍도의 다른 풍속화에서도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분위기로서 오늘날 민중 미술을 지배하고 있는 부정적 시각과는 차원을 달리 하고 있는 것이다.

   
해학 정신 및 평가

 

 

투쟁보다 중용, 갈등보다는 조화를 신봉하는 마음이 해학 정신이다. 해학 정신은 또한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대범함을 추구하는 마음, 즉 미래지향적인 생명력이다.

 

〈타작도〉를 지배하고 있는 활달하고 건강한 분위기는 중용과 조화를 신봉하는 해학 정신과, 사실보다 절대적 진실을 추구하는 관조의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용과 해학의 차원에서 보면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 없고, 관조하는 태도로 사물을 보면 절대 평등과 조화만이 있을 뿐이다.

 

〈타작도〉의 바탕에 깔려 있는 중용과 해학의 정신은 화원 김홍도 스스로가 깊은 사색을 통해 터득한 것이라기 보다는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 온 한국인들이 선천적으로 공유했던 생활 철학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타작도〉는 김홍도라는 특정 화가의 작품임이 분명하지만, 그 배후에 작용하고 있는 정신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있는 한국인들의 집단 정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