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전쟁이 끝난 다음 쯤 우리나라도 어쩌면 저렇게 살았을지 모른다.

by 이 상옥 posted Jun 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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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은 이 세상 어느곳에서나 부지런해야 한다. 주로 옥수수 농사를 일년에 세번이나 짖는 이곳은 한쪽에서는 수확을하는데 다른곳은 옥수수가 아직 사람 허리쯤 자라 있기도 하고 또 다른 밭에서는 씨를 뿌린다. 습관대로 아침마다 산보를 했다. 그때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역시 나이가 많이든 농군이셨다. 첨 만나는 동양 그링고인 날보고 아침 인사를 미소로 대신하신다. 나도 " 부에노스 디아스 쎄뇨오 ! "하고 웃으며 인사를 했다. 마치 60년대 중반쯤의 막 새마을 운동을 끝마친 우리나라의 농촌처럼 동네 길은 시멘트로 잘 포장돼있었다. 비록 원주민 인디오가 사는 마을이긴해도 항상 마을의 구조가 중앙에 언제나 교회가 있고 그 주위에는 관공서와 공원, 또 공원에는 너른 빈터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서 그늘에 앉아 친교를 나눌수 있게 돼있지만, 더운 열대야의 초 여름 아침인 탓인지 마을에는 오직 돌티아( 옥 수수나 밀가루로 만든 부치게 ) 공장 하나만이 일찍 문을 열고 돌티아를 만들고 있었다. 좀 특이한걸 말하라면, 한마디로 말해 개들의 천국 쯤으로 내눈에 비쳤다. 누가 주인인지 잘알수도 없는 개들이 아무에게나 꼬리를 치고 또 아무곳에서나 태평스럽게 잠을 자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미국같이 인공으로 주인의 취향에 따라 모양을 만들고 옷도 입히며 불임 수술까지 하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게 행하는 폭행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돼지와 개들이 싸우지 않고 신기하게 서로 잘 알아서 표정과 행동을 자연스래 관리한다는 뜻이다. 바로 산에서 흘러 내리는 개천을 따라 동네가 조성돼 있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옛 시골처럼 다리를 건너 동네로 들어오게 돼 있었다. 나는 그렇게 대략 아직도 조용하기만 한 동네를 한바퀴 돌고 숙소로 돌아가 아직도 자고있는 피터를 깨워서 수녀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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