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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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2016.11.07 13:08

아버지의 훈장(勳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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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훈장(勳章)
  


                                                       홍인숙(Grace)
    

아버지는 독립투사가 아니시다. 국가 유공자도 아니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그 분들 못지 않게 크고 빛나는 훈장을 가슴에 달고 계신다.

십여 년을 국가 공무원으로 외길을 걸으신 아버지.
일 년이면 부자가 된다는 요직에만도 십 년을 넘게 계셨으나, 아버지는 자식 삼남매 공부시키시고,  집 한 채 유지하신 것이 전부셨다. 부정부패가 공공연하던 그 시대에 그렇게 홀로 청빈을 고집하시며 외롭게 살아오셨다.

공직에 계시는 동안 끊임없이 받으시던 물질의 유혹과, 권력의 위협에도 굴복 안 하시고 끝까지 청렴을 고집하셨으며, 그것을 늘 자식에게 자랑스럽게 말씀해 주셨다. 그 때마다 아버지의 모습은 용기와 신념으로 가득찬 독립투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은 아버지만이 갖고 계신 빛나는 훈장이며, 자존심이며, 또한 그분을 지탱시키는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였다.

어릴 때, 아버지는 항상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나는 수직으로 쏟아지는 사랑을 받는 것에만 익숙하여 자랐다. 그리고 서서히 내 키가 자라는 만큼 아버지와 마주 건네는 사랑에 재미를 부칠 무렵, 어느 순간 훌쩍 비껴 간 세월 탓인가. 이제는 내 쪽에서 수직으로 아버지께 사랑과 관심을 쏟아드려야 할 때가 왔다.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내시고, 자식과 함께 계신 것이 부담이 되셨던지 노인 아파트에 입주하시던 날 소년처럼 기뻐하시던 아버지. 새 가구로 단장하시고 흡족해 하시는 아버지지만 나는 순간순간 아버지에게서 소리 없이 부서져 내리는 외로움을 볼 수 있었다.

자식이 장성하여 제 갈 길로 바쁠 때,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간마다 꼬깃꼬깃 외로움을 접고 계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머리에는 어느새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렸다. 한 음 낮아진 음성, 자꾸 작아지기만 하는 어깨, 늦어진 걸음걸이.. 뵐 때마다 가슴이 아파 온다.

아버지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말벗이 되어주실 분. 마음이 아름답고, 아버지의 훈장 이야기를 허황한 자랑이 아닌, 사랑으로 들어주실 아버지의 연인을 찾는다면 지나친 나의 욕심일까.  


  
<1995년 한국일보 여성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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