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1
어제:
254
전체:
459,100


수필
2016.11.14 09:19

그리움 

조회 수 155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그리움  / 홍인숙(Grace)

  

자정이 훨씬 넘었다. 방안을 훤히 비추는 빛을 따라 커튼을 열어보니, 밤하늘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린 듯 반가운 얼굴로 떠있다. 뒤뜰로 나갔다. 아직 잠들지 않은 정원의 모든 것들이

일제히 일어나 반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달빛이 아름다운 밤, 그 누구도 쉽게 잠들 수 없으리라.
  
달빛아래 푸르름이 짙은 나무들. 내일의 화려함을 위해 다소곳이 미소짓는 장미. 풀벌레 소리만이 간간이

들리는 적막한 가운데, 가슴속에 구슬처럼 쌓여있던 그리움들이 하나 둘 맑은 소리로 굴러 나온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평화 속에 눈을 감으면 어느새 망막위로 번져오는 그리움. 나이가 들수록

잔주름만큼이나 그리움도 늘어가고, 불면의 밤은 쌓여 간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듯, 세월은 결코 크지 않은 소리로, 그러나 쉼 없이 흘렀다. 잃고 싶지 않던 순간들이

하나 둘 흐르는 시냇물에 씻겨 내리듯 그렇게 가고, 이제 내게 남은 건 불쑥불쑥 나타나는 그리움뿐이다.

그리움은 설레임. 그리움은 눈물. 그리움은 기다림.  그리고 그리움은 잔잔한 물결 위에 반짝이는 은빛햇살

같은 것. 그렇게 그리움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항상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남아있어 더욱 애틋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정이 남고, 미련도 남고, 살아있는 꿈도 남아있다는 것이리라.
가슴속 깊은 곳에 그 많은 그리움들이,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승의 욕망으로 달려들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때, 그 그리움의 끈들을 얼마만큼이나 풀고 가려나.
  
달빛이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밤. 이렇게 평화로운 뜨락에서 임종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리라.
이제 새벽으로 향한 호흡이 시작되고, 몇 시간 후면 떠오를 태양을 위해 겸허히 비껴 설 달과 함께 마음속에

그리움들을 나누어본다.


                (1999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홍인숙(Grace)의 인사 ★ 1 그레이스 2004.08.20 1625
269 단상 내 안의 그대에게 (1) 홍인숙(그레이스) 2004.07.30 969
268 하늘의 방(房) 홍인숙(Grace) 2010.02.01 965
267 시와 에세이 만남과 마주침 홍인숙 2003.12.26 963
266 시와 에세이 원로시인의 아리랑 홍인숙 2003.03.03 961
265 단상 우울한 날의 생각 홍인숙(그레이스) 2004.10.04 959
264 시와 에세이 침묵이 필요할 때 1 홍인숙(그레이스) 2005.03.16 950
263 행복이라는 섬 홍인숙(Grace) 2010.02.01 949
262 시인 세계 내 안의 바다 -홍인숙 시집 / 이재상 홍인숙(그레이스) 2004.12.06 944
261 당신의 꽃이 되게 하소서 홍인숙 2003.08.07 941
260 시와 에세이 사랑한다는 것으로 홍인숙 2003.03.03 936
259 인연 (2) 그레이스 2006.03.23 936
258 시와 에세이 존재함에 아름다움이여 홍인숙(그레이스) 2005.03.16 932
257 수필 새봄 아저씨 (2) / 아저씨는 떠나고... 홍인숙 2003.05.31 929
256 내가 지나온 白色 공간 홍인숙 2004.08.02 922
255 마음이 적막한 날 홍인숙(Grace) 2004.08.16 915
254 밤이 오면 홍인숙(그레이스) 2006.05.05 915
253 수필 마르지 않는 낙엽 홍인숙(Grace) 2004.08.17 913
252 눈물 홍인숙(Grace) 2004.10.16 905
251 수필 슬픈 첨단시대 홍인숙 2004.07.31 904
250 슬픈 사람에게 홍인숙(그레이스) 2008.09.10 90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 Nex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