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6 08:24
20161120 한 끼 대접하고 받는 기쁨
아침마다 빈속으로 집을 나서던 습관을 바꿨다. 여행 중에는 아침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간 맞춰 끼니가 우선이 되다보니 든든하게 채워진 상태에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던 한 달 간의 여행습관을 집에 돌아와서도 이어가고 있다.
달달한 아침잠을 억지로 줄이면서 자칫 게을러지는 정신 상태를 토닥이며 아침운동을 나간다.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지는 체감 온도가 됐다. 히터로 온도를 올리기엔 텁텁한 공기가 싫다. 있는대로 움츠린 몸을 살살 늘리며 간단한 요가 동작 몇 가지 해 본다.
일어나면 꼭 치러야 되는 순서들이 조급하게 기다린다. 원래가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내 몸의 리듬은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오케이. 게다가 아침 먹기를 순서에 포함했더니 운동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자꾸 늦어진다.
파킹장이 꽉 찼다. 어디라도 비비고 들어설 곳을 찾는다. 쓰레기통 옆 공간이 안성맞춤이다. 물론 선명한 금을 그어 놓은 정석 주차 공간은 아니다. 간신히 커다란 쓰레기통을 살짝 스칠락 말락 차 뒷부분부터 집어넣는다. 얼핏 오른쪽 사이드 미러에 비친 영상이 내 가슴을 쳤다. 깊고 커다란 쓰레기통에 가득 쌓인 쓰레기들을 들추고 파헤치며 뭔가를 손에 잡아 입으로 가져간다.
사람이다. 잡동사니 쓰레기에 묻혀 쓰레기로 보였었다. 그런데 작은 물체 하나를 찾아 입에 대니 색깔 있는 액체가 자취를 감춘다. 물은 아니다. 뭘까. 목이 말랐을까. 아니다. 배가 고픈 사람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따끈한 국밥 한 그릇 먹이고 싶다.
가려진 공간이라 생각 했던 그 사람에게 졸지에 난 방해자가 됐다. 맘 놓고 쓰레기통을 헤칠 수도 없게 됐다. 슬며시 나를 피해 몸을 숨긴다. 차문을 잠그고 차 뒤편으로 돌아서 쓰레기통의 반대편을 살폈다. 안 보인다. 쓰레기 더미에 섞여 쓰레기처럼 보호색을 뒤집어썼다.
찬찬히 살펴보니 어두운 회색 상의로 후드까지 올려 머리 전체를 거북이처럼 쏘옥 들이밀고 숨겼다. 미동도 않는다. 침입자는 나다. 미안한 마음도 내가 가졌는데 왜 그가 숨어야 하나. 살며시 불렀다. 내가 당신 아침을 사 드려도 될까요. 소리 내어 대답 대신 살짝 얼굴을 보인다. 눈도 바로 뜨지 못하며 수줍어 머뭇거리는 모습에 방해자가 된 내 꼴을 숨기고 싶다.
따끈한 아침 한 끼 넉넉히 먹을 수 있는 지폐 한 장 공손히 손에 쥐어 주곤 빠르게 그 자리를 피해줬다. 잠시 잠간 그가 따스했으면 좋겠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피해가는 내 발길이 빨라지면서 내 심장 박동도 빨라진다. 몰래 흠모하던 사람에게 뭔가 마음을 들킨 때와 같이 설레는 가슴으로 한 동안 난 행복할 것 같다.
계절이 바뀌면서 소리도 없이 기온이 떨어진다. 가족을 떠나서 여섯 자 남짓 한 몸뚱이 쉴 곳 없는 사람들이 내 눈에 자주 보인다.
12/17/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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