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화해하다
홍인숙(Grace)
고목의 표피로 겹겹이 굳어버린
묵은 양초에 불을 밝힌다
촛불의 심장이 밝음에 놀라
화들짝 큰 눈을 껌벅인다
금세 출렁이는 그림자 곁으로
무심히 지나온 날들이
마른 꽃잎으로 흩날린다
그림자는 아직도 넘을 낯선 고개를 향해
긴 몸을 끌고 있다
벽시계의 두 침이 수직으로 이마를 맞댄다
밝음과 어둠이 침묵한 자리에
유년의 눈망울로 다가온 낯익은 얼굴
긴 잠에서 깨어 찾아온 그녀의 여윈 두 손에
살포시 연민의 손을 얹는다
‘미안해. 오랫동안 너를 잊고 있었어.‘
어디선가 하루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