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죽음’을 체험하다
2017.03.31 08:23
사순절에 ‘죽음’을 체험하다
가톨릭교회의 신자 수련 행사 중 ‘피정(避靜/retreat)’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피정’이란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들의 영신(靈信) 생활에 필요한 결정이나 새로운 쇄신을 위해 잠시 동안 고요한 곳으로 물러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어느 기간 동안 일상의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묵상과 자기 성찰기도 등 수련을 할 수 있는 곳 -주로 성당이나 수도원 또는 정해진 피정의 집 등이 이용되는데, 그리스도교 안에서 특별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자료를 챙겨보니, 원래 피정은 그리스도교 보다 더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45일간 단식하며 기도 했던 일(마태 4;1-2)을 예수의 제자들이 본뜨게 됨으로써, 피정이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은 반종교 개혁시대였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피정 수련의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죽음 체험’이 있다고 합니다. 근간에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짧은 시간이나마 산 사람이 냉기 도는 서늘한 관(琯)속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뚜껑은 닫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죽음’을 느껴보는 것이지요.
각설하고, 사순절이 시작되기 얼마 전 카톨릭 신자 몇 분이 피정(避靜/retreat)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관 속에 들어가 ‘죽음 체험’을 맛(?) 보기 위해 줄을 섰다고 카톡에 올렸습니다.
그 신자분의 체험담을 빌리면 이랬습니다.
“신부님이 관 뚜껑을 열어 주었고, 계단을 밟고 제단 위에 올랐다, 그리고 마치 드라큐라처럼 관속으로 들어가 한 발을 넣었고 이어 또 한 발을 모아 넣은 후 위를 보고 누웠다, 뒤통수가 바닥에 닿았고, 잠시 후 관 뚜껑이 스르르 닫혔다”고 했습니다..
ㅡ틈새로 잠깐 빛이 조금 새어 들어왔지만, 바로 그 위로 천이 덮였다.
관 속은 이제 완전히 캄캄해졌다. 눈을 떠도 어둠, 눈을 감아도 어둠...
두려웠다. 이런 게 무덤 속이구나 느껴지며 별의 별 생각이 다 났다.
바깥세상에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직장 동료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내가 아끼는 모든 물건이 바깥에 있었다.
관 속에 누운 채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곳엔 단지 몸뚱이만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뭔가 뒤통수를 쾅 치며 실감이 났다고 전했습니다.
ㅡ아,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바깥세상의 어떤 것도 이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구나. 숨을 거두었으니 이 몸도 곧 썩겠구나. 그럼 무엇이 남을까? 아, 그렇구나! 마음만 남는구나. 그게 영혼이겠거니... 그리고 한 5분이나 지났을까? 관 뚜껑이 열렸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바깥의 빛에 눈이 부셨고, 주변의 모든 것이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고 합니다. 불과 몇 분 남짓의 체험이었지만 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글썽거렸다고 실토했습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기분이 확연히 달랐다고 합니다. 그리곤 모두가 곁에 있던 그리스도상의 아래로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자연스럽게 그 발에 입을 맞추었다고 하였습니다.
ㅡ아주 짧은 체험이었다. 그러나 여운은 길었다.
눈 뜨고 있는 동안 잘 살아야겠구나. 그래야 죽어서도 여한이 없겠구나...
그 신자 분은 살아(?) 돌아와 사순절을 맞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오후 들어 본국 티브이로 우리 대통령의 구속 소식을 접했습니다. 길길히 날뛰며 환호를 지르는 '좃불떼'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우리가 인간 답게 ‘잘 산다는 것’ -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저 역시 착잡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몄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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