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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삶이 움직인다

by 홍인숙(Grace) posted May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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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시대> 기획연재 / 미국에서 쓰는 한국문학 (8) 



                   또 삶이 움직인다


                                                             홍인숙 (Grace Hong)



   비가 내린다. 엘니뇨 현상으로 북가주에도 드디어 세차게 비가 내린다. 나는 어느새 내 안에 깊은 향수로 남아있는 고국의 거리를 홀로 서성이고 있다.

   오랫동안 비다운 비가 없는 곳에서 살다 보니 늘 고국에서 만났던 소나기가 그리웠다.
한여름 갑자기 후드득, 후드득 요란한 소리로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 비를 피해 황급히 이곳저곳으로 찾아드는 사람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순식간에 비 오는 거리를 뛰어다니며 우산을 파는 소년들. 바람이 휑하니 불면 금세 뒤집혀버리는 얇은 비닐우산을 위태롭게 받쳐 들고 황급히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찻집에서,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거짓말처럼 하늘은 푸르고 골목에는 아름드리 무지개가 걸려있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툭툭 털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내가 떠나오기 전 고국의 소나기 풍경이다.

   정말 오랜만에 구성지게 비 오는 거리를 바라보니 가슴 후련한 그 옛날 고국의 소나기 정경이 잔잔한 우수로 밀려든다. 요즘 나의 심경이 복잡해서 더 그런가 보다.

   삶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거세게 변화의 물결이 일상을 침투한다. 그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감사할 일인지도 모른다. 삶의 움직임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만남과 헤어짐도 그중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것 같다. 만남과 헤어짐은 상반된 얼굴로 공존하며 수시로 우리의 인생을 넘나든다.


   오래전, 아이들이 나이가 차서 집을 떠나게 되면 빈집 증후군 (Empty nest syndrome)에 시달릴 엄마들에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지역 신문에 수필 ‘이별 연습’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엄마들로부터 공감한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어느 학원에서는 그 글을 게시판에 붙여놓아서 많은 엄마가 읽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엄마는 탯줄을 두 번 자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엄마들에게 아이들이란 세상 전부이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것은 세상에서 분리되는 것같이 아프고 힘든 일인가보다.

   내게도 그런 일이 찾아왔었다. 작은아들이 서부에서 동부 끝 버지니아 주 의과대학으로 진학할 때 애틋했던 이별의 경험이 떠오른다. 이곳의 이민 1세들이 대부분 그렇듯 나도 맞벌이 생활로 아이들을 잘 돌봐주지 못했다. 나의 정성스러운 보살핌도 없이 어느새 훌쩍 성장한 아이라 더 애틋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매일 가슴이 저려왔다.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아픔으로 하루하루 날짜를 짚어가며 떠나보낸다는 일에 힘들어했다. 그리곤 아이가 떠난 후 오랫동안 허전함은 그 무엇으로도 충당할 수 없었다. 차츰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가 학업을 마치고, 결혼도 하니 어느새 그때의 이별을 잊고 살았다. 아니, 헤어지는 것도 삶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의연해져 있었나 보다.

   그런데 요즘 난 또다시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떠나보내는 헤어짐이 아니라 내가 정든 사람들로부터 떠나가는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다. 이십 대에 고국을 떠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린 후 사십 년 넘게 산 이곳, 친구도 주위 환경도 너무나 익숙한 이곳을 떠나기 위해 매일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그때 동부 버지니아로 떠났던 아들이 텍사스 메디컬센터에 근무하고 있다. 그 아들에게 첫 아이, 즉 우리 집안에 첫 손주가 태어났다. 예쁘고, 사랑스럽기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아들에게 아기를 길러준다고 약속도 했지만, 막상 가보니 아들, 며느리가 함께 일하면서 육아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작고 신비스러운 새 생명이 자꾸만 눈에 밟혀 아주 아이들이 있는 텍사스로 이주를 결정한 것이다.

   나이 들수록 헤어짐의 의미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막상 나 자신은 묵은 살림살이 정리와 새 지역에 가서 적응할 생각에 경황이 없어 떠난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는데 한 사람, 두 사람 알아지면서 놀라고, 섭섭해 하는 그들을 보며 반사적으로 차츰차츰 내가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삼십 년 지기 친구들이라 죽는 날까지 함께 지내리라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이사를 한다니, 그것도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먼 다른 주로 떠난다니 그들에겐 충격이었고 서글픈 배신이었나 보다.

   ‘늙을수록 친구가 필요한데 살면 얼마나 산다고 멀리 떠나 손주 키우는 고생길을 자처하느냐’며 다시 생각해 보라는 사람.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만나자'는 사람... 많은 분들이 섭섭해 하며 애틋한 마음 써줌이 참으로 고맙다. 그들의 서운함이 클수록 나도 점점 슬퍼지기 시작했다.

   어떤 형태로든 헤어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별도 애틋하지만 정든 사람들의 곁을 떠나는 이별에도 그 못지않은 애틋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 세월 내가 차지했던 공간이 어느 한날 사라져버릴 것을 생각하니 또 다른 묘한 허전함이 엄습해왔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처럼 그건 또 다른 상실감이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나의 존재가 잊혀진다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이별을 준비하다 보니 그동안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기만 하고 베풀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함께 하였을 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 무척이나 후회로 남았다. 이제라도 정든 사람들의 곁을 떠나면서 그동안의 고마움에 조그만 답례라도 남기고 싶었다.

   날짜가 없었다. 서둘러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열어 흩어져 있던 글들을 찾아내 탈고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안과 의사가 당장 백내장 수술을 권할 정도로 눈이 안 좋아 컴퓨터 사용을 오래 하기 힘들었다. 한편으론 이사를 준비하느라 자유롭게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과연 나의 글이 발표할만한 수준을 갖추었는지 염려도 되었다. 그때마다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으니 그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멀리 타국에서 글을 쓰는 미주 문인을 격려해 주시려고 과분한 평설을 보내주신 성기조 박사님과 김귀희 선생님의 많은 도우심으로 빠른 시간에 마음에 꼭 드는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출판기념회 형식의 조촐한 자리를 만들어 지인들과 문인들을 한자리에 모셔 그동안의 고마움을 전하고 헤어짐의 인사도 나누었다.

   내 생애 또 한 번 큰 울림으로 움직이는 삶. 이제 본격적인 이사 준비에 들어간다. 
   텍사스 휴스턴. 그곳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린 나이에 고국을 떠나올 때 신비로웠던 설렘이었다면, 이제는 생활의 소소한 부분까지 구체적인 설렘으로 염려도 되고 두근거리기도 한다. 새로운 시도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즐기고 편안해 하던 나에게 노년에 삶을 바꾼다는 것은 큰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나는 것이 꼭 잃는 것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새로운 문화와 환경이 오랫동안 안일함으로 멈추어 있던 나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것이다.
아들 부부 외엔 지인 한 사람 없는 낯선 곳이지만 손녀딸을 키우며 가족을 사랑하고, 변화하는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은 노년의 삶에 새로운 충전이며 소망을 이루기 위한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될 것이다.

   아직도 빗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젖은 가로등만이 비오는 거리를 지키고 있는 이 밤이 또 하나의 향수로 내 안에 출렁일 것을 나는 안다. 이 시간, 비 내리는 창가에서 옛 고국의 거리를 서성이듯, 이제 나는 이곳을 떠나 텍사스에서 오랜 세월 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캘리포니아의 정든 길을 저벅저벅 걸을 것이다. ‘기억의 예술 작가’로 유명한 패트릭 모디아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혼재하는 시공간, 그 ‘지평’의 순간처럼.


  <수필시대> 통권 73호  3/4-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