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친구들과 가까운 바닷가를 걸었다. 아침 바다의 활기찬 기운으로 인해 건강도 좋아지고 사귐도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속적인 만남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상쾌한 아침 바다의 맛을 잊지 못해 일주일에 한두 번 남편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거리도 멀지 않고 전경도 아름다운 레돈도 비치, 아침 바다의 사람들에게는 하루를 선물처럼 껴안는 소중한 마음이 느껴지고, 나도 그들 중의 한 일원이 된 듯한 뿌듯함으로 걸음을 뗀다.
잘 닦아놓은 산책길에는 걷고, 뛰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곁에는 파도를 타는 싱싱한 젊은이들이 파도와 함께 튀어 오르고 있다.
사람만 튀어 오르는 것이 아니다. 웬 돌고래는 그렇게 많은지. 바로 코앞에서 연출되는 고래 쇼는 환상이다. 얼마 전에는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돌고래를 찍고 전화기를 내리는 순간, 어느새 밀려든 높은 파도 벽에 열 마리가 넘는 돌고래가 나란히 빗살치 듯 튀어 오르는 모습이 얼마나 투명하게 비치던지. 거대한 수족관에서의 돌고래 쇼이거나 특수 영상기법을 이용한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만큼 신비스러운 광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라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쉬웠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바닷가는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다. 언덕배기 높은 건물들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산책길, 하늘빛이 맞닥치는 햇빛 찬란한 바다. 그리고 햇살이 서서히 물들어오는 산책길과 바다 사이의 모래사장이다.
갈매기가 떼 지어 노닐고 있는 아침 모래사장은 해가 들지 않아도 따뜻하고 평화롭다. 색다른 광경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 겨울에, 상체가 거의 드러난 하늘하늘한 베이지색 긴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이런저런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카메라맨들이 함께한 것으로 봐서 바다를 배경으로 화보를 찍고 있는 모양이다.
갈매기의 평화와 한참 동떨어진 상황도 있다. 해초 무더기가 이상하게 큰 것 같아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가다가 움찔 물러선다. 사람이다. 누더기 담요를 덮은 몸이 둥그스름하게 말려있다. 근처에 라이프가드 차가 보여 안심이다. 한 담요 안에 두 사람이 들어있은 것도 본다. 잠든 그들 얼굴 위로도 햇살이 비친다. 체온을 나누는 모습이 오래 슬프다. 하늘거리는 그녀의 드레스와 홈리스의 담요를 뒤로하고 가던 길로 마음을 돌린다.
자전거 뒤에 아기를 태운 여자가 지나간다.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자전거 앞에 아기를 태운 남자도 지나간다. 앞에도 태우네, 더 부럽다. 그 남자가 잠시 쉬는 틈에 자전거에 다가가 아기를 태운 의자를 자세히 살핀다. 다리를 쭉 펼 수 있게 만들어진 아기 의자 위에 앙증스러운 아기 안전모가 얹혀있다.
누군가를 태우고 바닷가를 달리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다. 자전거 타기 배울 것, 오래전에 꾸었던 새해 꿈 다시 끄집어낸다. 자전거 앞이나 뒤에 누구를 태울 것인지, 상상만으로도 신난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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