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고령화 속도가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고 한다. 출산율은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로 낮은데 건강에 대한 관심의 증대, 암 조기진단 체제의 구축, 사회보장제도의 확충 등으로 노년층의 사망률이 계속 떨어지다 보니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노령 인구 비율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노동인력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젊은이 한 사람이 노인 둘을 봉양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3D업종을 기피하고, 고학력자들은 신분에 걸맞는 임금을 원하니까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실업률이 좀처럼 안 떨어진다.
고학력 실업자는 직장을 찾는 데 세월을 보내고, 노동인력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로 메워지고, 그 한 켠에서 노인들은 자식의 푸대접을 받으며 점점 더 소외되고 있다. 65세 이상을 노령인구로 잡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이보다 훨씬 아래 나이의 사람들이 ‘정년’과 ‘실업’에 봉착해 있다. 이 모든 것은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아닌가.
나는 재작년에 처음 일본에 가보았고 최근에 다시 일본에 다녀왔다. 두 번의 일본 방문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있다. 하나는 어디를 가나 노인네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는 배워도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라면 상품을 판매하는 종업원이나 버스기사가 노인이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 일을 무척 즐겁게 하고 있는 듯했다.
몇 년 전에 나는 이와나미서점 편집부에서 엮은 <나의 정년 후>의 번역원고 교정을 본 일이 있다. 이 책을 원고 상태로 보면서 일본사회가 노령화 문제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가를 배운 바 있다. 일본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한 후에 크게는 다섯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한다고 한다.
첫째,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여행을 한다.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여행을 취미로 삼는데, 건강이 좋은 사람은 자전거 여행을 한다. 둘째, 그림을 그리거나 전각(篆刻)을 하거나 요리를 배우거나 뭐든 하나를 골라 취미생활을 한단다. 셋째, 자원봉사자 일을 찾아서 한다. 넷째, 지역박물관이나 문화원의 가이드 등 지역사회를 위해 일한다. 다섯째, 집안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이를 돕는 간호사 일을 자청한다.
일본의 벳부시에서 노인복지를 위한 시설 일등원(一等園)을 설립한 미야우치 하쿠이치(宮內博一) 씨가 쓴 노년이 좋아야 인생이 아름답다란 책을 보면 참고할 만한 좋은 말이 나온다. 초고령사회에서는 부모자식간에도 윤리가 필요한데, 부모가 너무 일찍 자식에게 재산을 증여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생전에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증여하면 갖가지 비극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제약회사 가문에서 아닌게아니라 ‘비극’이 벌어졌었다.
이 책 제6장의 제목은 ‘멋을 낸다는 것은 살아 있는 증거’다. 몸을 늘 깨끗하게 하고 옷은 청결하게 입는 노인, 거기다 적당하게 멋을 낼 줄 아는 노인이 되자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크게 주목했던 곳은 제5장 ‘호기심, 학구심이 밀어주는 생생한 인생’이다. 몸은 노쇠해졌지만 마음은 젊게 살려면 세상일에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여기에 학문에 대한 탐구심이 보태지면 더욱 좋다는 말이다.
나는 간혹 과천도립도서관과 과천정보과학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주로 그 달의 잡지를 보거나 책을 빌려오는데 두 도서관에는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노인 몇 분이 계시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두툼한 두께의 안경, 처진 어깨, 조심스런 몸가짐……. 나는 이런 분들을 뵈면 절고 고개가 숙여진다. 눈치 안 채게 유심히 이분들을 관찰해보았는데 단지 소일 삼아 도서관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젊은이들 못지 않게 무엇인가 읽고 연구하고 있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자세로 이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과천도립도서관에는 어린이도서관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이번에 도서관이 증축공사를 하면서 노인열람실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는데, 내 욕심이 조금 과했나 보다. 하지만 파고다공원에서 장기며 바둑을 두며 소일하는 노인 분들에게 적당한 일거리와 보다 나은 휴식공간을 만들어드리기 위해 국회의원이나 정부당국자 중 누구라고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도 너무 과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집집이 계시는 노인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드리는 것도 중요하고 노인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 찾아 나서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에 따른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노동인력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젊은이 한 사람이 노인 둘을 봉양해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게다가 젊은이들은 3D업종을 기피하고, 고학력자들은 신분에 걸맞는 임금을 원하니까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실업률이 좀처럼 안 떨어진다.
고학력 실업자는 직장을 찾는 데 세월을 보내고, 노동인력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들로 메워지고, 그 한 켠에서 노인들은 자식의 푸대접을 받으며 점점 더 소외되고 있다. 65세 이상을 노령인구로 잡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이보다 훨씬 아래 나이의 사람들이 ‘정년’과 ‘실업’에 봉착해 있다. 이 모든 것은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아닌가.
나는 재작년에 처음 일본에 가보았고 최근에 다시 일본에 다녀왔다. 두 번의 일본 방문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있다. 하나는 어디를 가나 노인네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는 배워도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라면 상품을 판매하는 종업원이나 버스기사가 노인이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 일을 무척 즐겁게 하고 있는 듯했다.
몇 년 전에 나는 이와나미서점 편집부에서 엮은 <나의 정년 후>의 번역원고 교정을 본 일이 있다. 이 책을 원고 상태로 보면서 일본사회가 노령화 문제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가를 배운 바 있다. 일본에서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한 후에 크게는 다섯 가지 중에 한 가지를 택한다고 한다.
첫째,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여행을 한다.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여행을 취미로 삼는데, 건강이 좋은 사람은 자전거 여행을 한다. 둘째, 그림을 그리거나 전각(篆刻)을 하거나 요리를 배우거나 뭐든 하나를 골라 취미생활을 한단다. 셋째, 자원봉사자 일을 찾아서 한다. 넷째, 지역박물관이나 문화원의 가이드 등 지역사회를 위해 일한다. 다섯째, 집안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이를 돕는 간호사 일을 자청한다.
일본의 벳부시에서 노인복지를 위한 시설 일등원(一等園)을 설립한 미야우치 하쿠이치(宮內博一) 씨가 쓴 노년이 좋아야 인생이 아름답다란 책을 보면 참고할 만한 좋은 말이 나온다. 초고령사회에서는 부모자식간에도 윤리가 필요한데, 부모가 너무 일찍 자식에게 재산을 증여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생전에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증여하면 갖가지 비극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제약회사 가문에서 아닌게아니라 ‘비극’이 벌어졌었다.
이 책 제6장의 제목은 ‘멋을 낸다는 것은 살아 있는 증거’다. 몸을 늘 깨끗하게 하고 옷은 청결하게 입는 노인, 거기다 적당하게 멋을 낼 줄 아는 노인이 되자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크게 주목했던 곳은 제5장 ‘호기심, 학구심이 밀어주는 생생한 인생’이다. 몸은 노쇠해졌지만 마음은 젊게 살려면 세상일에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여기에 학문에 대한 탐구심이 보태지면 더욱 좋다는 말이다.
나는 간혹 과천도립도서관과 과천정보과학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주로 그 달의 잡지를 보거나 책을 빌려오는데 두 도서관에는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노인 몇 분이 계시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두툼한 두께의 안경, 처진 어깨, 조심스런 몸가짐……. 나는 이런 분들을 뵈면 절고 고개가 숙여진다. 눈치 안 채게 유심히 이분들을 관찰해보았는데 단지 소일 삼아 도서관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젊은이들 못지 않게 무엇인가 읽고 연구하고 있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자세로 이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과천도립도서관에는 어린이도서관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이번에 도서관이 증축공사를 하면서 노인열람실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는데, 내 욕심이 조금 과했나 보다. 하지만 파고다공원에서 장기며 바둑을 두며 소일하는 노인 분들에게 적당한 일거리와 보다 나은 휴식공간을 만들어드리기 위해 국회의원이나 정부당국자 중 누구라고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도 너무 과한 욕심은 아닐 것이다. 집집이 계시는 노인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드리는 것도 중요하고 노인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 찾아 나서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