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독자에게 올리는 편지

by 이승하 posted Aug 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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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의 독자에게 올리는 편지

  이 승 하


  1984년 1월 1일 중앙일보사가 제게 시인의 관을 씌워준 이래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이 요즘에는 월계관이 아니라 제 시신이 안치된 관이란 생각이 많이 듭니다. 관 속에서 호흡하기? 관 속에서 시 쓰기?


  이십 년을 넘게 글을 쓰면서 살아왔는데 요즘처럼 힘에 부치는 때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좀 나아질까요? 아니면 더욱 악화될까요? 글을 쓰는 것도 이젠 두렵고 책을 내는 일은 더더욱 두렵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만났다』라는 산문집을 낸 적이 있지요. 책을 내자마자 영화사의 자회사인 출판사가 영화의 흥행 실패로 문을 닫아 인쇄를 몽땅 책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영화 때문에 출판사가 망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전 그 책을 주변 사람들에게 다 나눠 주었습니다. 공수래공수거. 책도 돈처럼 무덤에 지고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1994년 모월 모일에 출판사 고려원에서 제게 전화를 해왔습니다. 시집 내실 원고가 준비되어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시집 시리즈를 막 내기 시작했는데 이형기, 오세영, 이윤택의 시집 원고를 받아 1, 2, 3번 번호를 매겨 시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데 4번을 저로 모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출판사의 정성이 놀라워 저는 요청에 흔쾌히 응하였고, 원고를 준비하여 넘겼습니다. 웬걸, 굴지의 그 회사가 어학 교재 사업에 뛰어들더니 문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그 출판사에서 낸 수많은 시집과 함께 제 시집도 구정가 세일로 팔리는 것을 보고 눈에 뜨일 때마다 얼른 사서 집에 쌓아둘 때의 서글픔이라니.


  책을 내는 것에 대해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존 케네디 툴이라는 미국 소설가가 있었지요. 1937년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그는 1969년, 그러니까 서른둘의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쳤습니다. 콜롬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몇 개 대학에 출강하면서 밤잠을 줄여가며 쓴 장편소설 『저능아들의 동맹 A Confederacy of Duces』을 들고 수많은 출판사를 찾아가 직접 내밀기도 하고 우편으로 부치기도 했지만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없었습니다. 몇 년 동안 필사적으로 책 출간을 시도했지만 끝끝내 자신의 작품을 인정해주는 출판사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툴은 총을 한 자루 구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한을 어머니가 풀어주고 싶었던가 봅니다. 아들의 사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원고를 들고 줄기차게 출판사를 찾아다녔습니다. 12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이나 말입니다. 우와! 12년 세월 동안 아들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닌 어머니의 집념이라니! 어머니의 정성이 헛되지 않아 어느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기로 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 퓰리처 재단이 퓰리처상 소설 부문에 상을 주기로 한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상을 준 것은 퓰리처상 역사상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저능아들의 동맹』이 그 만큼 좋은 소설이었다는 말입니다.


  책 한 권을 내는 일이 이렇게 어렵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몇 권 책의 저자인 저만 해도 서점에 가서 책을 살 때 저자와 출판사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책을 사지 않습니다. 비싸다, 별 재미가 없다, 편집이 엉성하다 등 온갖 타박을 하며 책을 읽고는 헌 신짝 버리듯이 신문지 버리는 날 내다버리지요. 이사할 때는 책이 더더욱 천덕꾸러기가 되지요.


  아마 제 책도 상당수 그런 식으로 버려질 것입니다. 제가 애써 낸 책을 미지의 독자가 읽지도 않고 외면해 버린다면? 그러나 책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 저의 운명인 것을 어떻게 합니까. 시인이 낸 동화책 『연어』가 100쇄를 찍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내 책의 값어치 없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아아, 글을 쓰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책을 내는 일은 더더욱 부끄러운 일입니다. 나무를 베어 펄프를 만들고 펄프를 갖고 책을 만들지 않습니까. 지상의 산소가 제 책이 되었습니다. 제 책이 산소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전혀 자신할 수 없습니다. 제 책을 극소수의 독자가 읽을지라도 그 극소수의 독자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릴 일입니다.


  모든 만남은 기적인데, 그 기적이 제 책을 매개로 하여 일어난 것이니 책의 저자인 저는 독자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릴 일입니다.


  첫 시집 『사랑의 탐구』를 냈을 때 출판기념회 회식 자리를 마련해준 문학과지성사의 여러 선생님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김병익, 김현, 김주연, 김치수 등 문단의 대가들이 내미는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고 잔뜩 취하여 돌아오면서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죽어도 웃으며 눈을 감으리라’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날의 감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낳은 자식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의 감격 말입니다. 고고의 울음을 전날 터뜨린 생명체는 가벼웠고 제 어깨는 무거웠습니다.


  제 책은 제 영혼의 비명이기에 몇 사람이 들어주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단 한 명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있기를 바라면서 저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미지의 독자와의 만남, 그 기적적인 시간을 위하여.


  ㅡ『월간에세이』(2007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