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비애

by 성백군 posted Oct 1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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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비애 / 성백군



달은 중천에 떠 있고
야자나무 그림자가 뱃전을 두드린다

빈 갑판 위
동면하는 구렁이처럼 감겨 있는
밧줄이 달빛에 잠시 눈을 떠서
제 모습 드러내고는 성가시다는 듯
다시 잠이 든다

파도에 휩쓸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다가
나무에 붙블려 물속을 떠나지 못하는
저 그림자의 비애
육신에 갇혀서
자유를 잃어버린 영혼의 고뇌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야자나무 몸짓 따라
바닷속 흑암을 뒤지며 탈출구를 찾는데

어느새
달 문턱 걸터앉은 한 무리의 구름이
바다에 그물을 드리우고 그림자를 낚아 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