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정사 / 성백군
좀 참지, 한낮인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급했나 봐
검은 구름이 장대 같은 빗줄기를 내리꽂는다
숨 막히도록 열기를 뿜어내면서
젖어 드는 대지(大地)를 보다보다 노한 하늘이 마침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고래고래 천둥을 치는데
섬광이 번쩍인다. 질투의 화신이다.
바람[風]으로 초목(草木)를 움켜잡고
발길로 차고
주먹질로 산과 들판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팬다
대지(大地)의 서방질이다
그게 팬다고 그만둘 일이던가
바람이란 본래 한번 시작하면
물이 나오고, 몸이 젖고, 주변을 적시고, 홍수가 나고,
끝내 살림살이 박살 내고 패가망신해야만 끝나는 것인데
그래도 그동안 살아온 정이 더러워서
그만두었으면 하는 미련은 있는 것인데---
태풍이 지나가고
바람은 끝이 나고
여기저기 벗어놓은 옷처럼 나뭇잎이 나뒹굴고
누가 보든지 말든지
욕정을 다 채운 대지(大地)는 정사 후 퍼드러진 잡년처럼
꼼작 않는다.
이곳저곳 풍수(風水) 피해 지역을 남겨놓고
그게 만족인지 허전함인지 알 수 없지만, 기꺼이
하늘의 처분을 기다리면서
620 - 0807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