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날의 기억

2018.07.25 18:53

김현준 조회 수:6

여름날의 기억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장착반  김 현 준

 

 

  ‘싸 ― 르 싸 ― 르’

  매미의 울음소리로 여름날의 하루가 시작되고 저문다. 8월도 오기 전인데 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넘어섰다. 내가 태어나기 몇 해 전, 대구 한낮의 기온이 섭씨 40.1도를 기록했다던데, 생전에 40도를 웃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구 온난화 탓인지….

  비가 내릴 조짐은 없어 보인다. 앞으로 십여 일은 땡볕이라며, 아스팔트가 녹을 때까지 달굴 기세다. 그래도 선풍기와 에어컨 덕분에 부채를 흔드는 일은 없다. 이럴 땐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을 피하는 게 상책, 상호 불간섭이 피서의 요체다.

 

  1958년 여름. 바짝 마른 소년은 양은 도시락에 찐 감자 서너 개를 담아 아침부터 가출을 감행했다. 여름방학책은 핑계거리, 벌써 마음은 물속을 텀벙댄다. 발가숭이 녀석들, 입술이 파래지도록 물속을 들락날락거리니 등판이 새까맣게 탔다. 땅거미 지는 황혼녘에 소 등을 타고서 설핏 잠이 들었다.

  ‘음메!’ 이웃집에 팔려간 송아지가 어미 소를 부르자, ‘음머!’ 하며 어미가 화답한다. 양은 도시락에 다슬기와 재첩이 소복한데, 어머니는 양은솥에 다슬기 수제비를 끓이시느라 땀이 비오듯 한다. ‘땡그렁! 땡그렁!’ 워낭소리에

  “아들아, 모깃불 피워라. 벌써 모기떼가 소 엉덩이를 무는 구나.

  바지게 짊어진 아버지가 사립문을 들어서며 소부터 챙기신다.

 

  가장 기억에 남는 1968년 여름이다. 경상북도 영천 보병 36사단 연병장은 학훈단 훈련생들의 땀으로 질척였다. 쏟아지는 ‘선착순’과 ‘대가리 박아!, 조교의 고함소리에 더위를 잊었다. 낙동강 상류에서 ‘누워 취침, 일어서!’ 하다보니, 어느 새 해가 졌다. 제주도 모슬포가 고향이라는 구대장 박 소위는 딸이 다섯 살이라고 뻥을 쳤다. 현역 장군의 아들인 동기생 K는 구대장의 옷을 입고 밤마다 외출을 했다. 군부 독재는 한참 이골이 났다.

 

  2028년 여름도 여지없이 뜨겁다. 아내는 피서라도 가자고 재촉하지만, 새로 산 AI 자동차가 광고처럼 스스로 잘 달릴지 의문이다. 금강산 관광 길은 열린지 오래고, 더 늦기 전에 가보자는 친구 말에 ‘암! 그러세.’ 한 것이 또 몇 달 지났다. 근력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달포 전에 세상 떠난 죽마고우가 안 됐지 싶다가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제 떠나도 여한이 없네. 한 세상 편히 잘 살았지, . 그런데 이까짓 더위가 무슨 대수라고?  

                                        (2018.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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