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를 따며

2018.08.26 05:44

전용창 조회 수:3

고추를 따며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누나는 고추를 따지 못해서 걱정을 했다. 매형이 손목을 다쳤다고 꿈쩍하지 않으니 장마가 올라오면 고추가 썩을까 봐 큰일이라며 애를 태웠다. 나는 토요일 오후에 가자고 했다. 실은 토요일 오후에 교회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아야 하지만 누나를 편안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누나와 매형은 나랑 화물차를 타고 경각산 자락 월성리로 갔다. 산비탈에 빗물을 머금은 나뭇잎과 풀잎은 생기가 가득하고 행복해 보였다. 차속에서 누나는 혼잣말로 연신 매형을 공격했다. 땅을 사도 가까운 곳에 사든지 말든지 하지 이렇게 멀리다가 사놓고는 식구들 고생시킨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내 가까운 곳은 평당 수 십만 원 하는데 적은 돈으로 몇 평이나 장만하겠느냐고 설명해 준다. 또 도시는 차 소리는 시끄럽고 경치도 없는데, 월성리는 산능성이가 병풍처럼 둘러있고 편백나무 숲도 가까이에 있으며, 사시사철 개울물이 흐르니 시내 근교보다 여기가 얼마나 더 좋으냐고 했다.

 “매형이 여기 농장에 오지 않으면 친구들과 낮술을 마시며 기원이나 오고 갈 텐데, 이곳에서 고추도, 생강도, 울금도, 참깨도, 오이도, 호박농사도 지으며 식탁에 오르게 하니 얼마나 좋아? 머지않아 이곳이 금싸라기 땅이 될 거야.

매형은 자신의 마음을 잘도 짚었다며 웃으셨다.

 

  나는 일을 할 때마다 스마트폰의 즐겨찾기에 녹화된 찬송곡을 연속 재생으로 듣는다. 전체 찬송곡 600여 곡 중에 내가 좋아하는 50여 곡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한 곡을 줄잡아 2분만 계산해도 100여 분이나 되니 1시간 반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다. 찬송곡을 들으며 간간이 들녘을 바라보면서, 이처럼 아름다운 천국동산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가슴속 깊이 감탄과 찬미가 흐른다. 누나도 아는 찬송곡이 흐리니 따라 부른다.

“내 주를 가까이 가게 함은 /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 내 일생 소원을 늘 찬송하면서 /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누나도, 매형도,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교회나 성당에 나가야 돼. 누나는 일 년에 몇 차례 절에 가서 가족의 무탈을 빌고는 오지만 그렇다고 불교 신자도 아니다. 매형은 아예 무신론자다. 누나도 교회에 나가고 싶어 하지만 매형이 반대한다. 매형도 처음에는 교회나 성당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직책도 높고, 믿음도 좋다고 하는 교인들한테 너무도 여러 차례 상처를 받아서 트라우마가 깊이 남아있다고 했다. 행함이 올바르지 못한 신자들이 자신만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내 생각으로는 성경책만 들고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비록 결석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실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고추는 그동안 가뭄에 다 자라지 못해서 그런지 꼭지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힘을 주어 따면 작은 가지까지 꺾였다.

  “누나, 고추가 아직 젖을 떼지 못했나 봐. 아직 따지 말라며 엄마 팔을 꼭 붙들고 있어!

  “동생, 그런가 봐. 나도 잘 안 떨어져!

  “누나, 오늘 그만하고 갈까?

  “안 돼, 비가 며칠 동안 온다는데 비 맞으면 썩어.

 고추도 때가 되면 잘 떨어질 텐데, 억지로 따려 하니 고추에게 미안했다

                                                   (2018.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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