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부침개

2018.08.31 10:48

신효선 조회 수:4

비오는 날의 부침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 효 선

 

 

 

  푹푹 찌는 무더위와 가뭄이 계속되더니, 아침에 눈을 뜨니 단비가 내리고 있었다. 불볕더위를 식혀주는 한 줄기 빗발이 얼마나 반가운 손님인가? 빗소리를 듣는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유리창에 부딪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오랜 가뭄으로 목마른 대지가 촉촉하게 젖어 가며 생기를 찾아간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맛있는 부침개를 먹으면 기분이 참 좋아질 것 같아, 텃밭에서 수확한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 보았다. 애호박, 풋고추, 부추, 깻잎, 양파에 달걀을 넣고 부침가루와 반죽하니 부침개 재료가 완성되었다. 역시나 비오는 날엔 부침개가 제격인 간식거리다. 옛 우리 가요에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노랫말이 있듯, 부침개는 예나 지금이나 비교적 손쉽게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서민의 대표적 먹거리의 하나다.        

 

  프라이팬에 부침개 반죽을 넣었을 때 '치이~' 하는 소리는 비바람 소리와 비슷하고, 기름이 튀는 '치직직' 소리는 빗소리의 주파수와 거의 흡사하다고 한다. 부침개 부칠 때 기름이 튀는 소리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와 유사하여 빗소리와 부침개의 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비 오는 소리가 부침개를 만들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해, 빗소리를 들으면 무의식중에 부침개 부치는 소리가 연상돼 비가 오면 자연스럽게 부침개 생각이 나는 것이라고 한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비가 오는 날 간식이 생각 날 때면 어머니는 가끔 부침개를 부쳐주셨다. 그때는 재료가 그리 많지 않아 풋 호박과 밀가루를 반죽해서 솥뚜껑을 뒤집어 돼지비계덩이를 문질러 부침개를 부쳐주셨다. 어찌나 그 맛이 좋았던지 우리 형제들은 부침개가 익기 무섭게 서로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했었다. 어릴 때 제삿날엔 친척들도 모두 모여 제사음식을 준비했는데 부침개는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었다. 주방을 기웃거리며 채반에 부쳐놓은 부침개를 먹고 싶어 하는 우리한테 작은어머니는 제사를 지내고 먹어야 하는 거라며 우리를 달래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부침개보다는 오히려 피자를 선호한다. 그런데 우리는 피자보다 조개와 채소를 넣고 부친 부침개가 더 맛있다.

 

  결혼 초 큰아이를 임신했을 때 시부모님 집에 갔을 때다. 어머니는 나한테 점심으로 어린 호박을 넣고 수제비나 해 먹자며 밀가루를 나에게 주시며 반죽을 하라 시키시고 밭에 가셨다. 어머니가 오실 때까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밀가루에 물을 조금 붓고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어머니가 오셔서 보시더니 어이가 없는지 “너 그러다간 저녁에도 못 먹겠다.” 하시며 반죽을 하시는데 어머님의 요술 같은 손놀림에 뚝딱 몇 분 만에 야들야들한 수제비 반죽이 되었다. 친정에서는 식구가 많아 내 손이 가기 전에 완성품으로 내 앞에 와서 먹기만 하면 되었는데, 시집과 친정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 결혼 전 친정에서 배워 오지 못 한 것이 어머님께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어머니한테 수제비뿐 아니라 부침개도 배워 아이들 간식거리로 가끔 내놓을 수 있었다.

 

  이제 큰며느리인 나는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명절과 기일이면 내가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한다. 아무리 조금씩 한다고 해도 동그랑땡, 깻잎 전, 명태 전, 꼬치, 두부를 부치면 한나절이 훌쩍 지난다. 더구나 도와줄 사람 한 사람 없이 혼자 할 때는 음식 중에서도 부침개를 하고 나면 일이 다 끝난 것 같다.

 

  나는 솜씨를 내어 고소하고 바삭한 부침개를 부쳐놓고 남편을 불렀다. 서재에서 무엇에 열중인지 식사 때만 얼굴을 볼 수 있는 처지다. 남편이 정년 한 지가 벌써 삼 년이 되어 가나 보다. 정년퇴직하기 몇 년 전부터 정년만 하면 밥도 하고 집안일을 자기가 도맡아 한다고 입버릇처럼 하면서, 반찬을 맛있게 해주려면 요리학원도 다녀야겠다고 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아직껏 식사시간에 함께 해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별나게 부침개를 좋아하는 남편, ‘코리안 피자’라고 하면서 부치기 바쁘게 몇 장을 먹으면서 맛있다는 칭찬도 잊지 않는다. 부침개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비 오는 날의 단골 메뉴로, 온 식구가 오순도순 즐겁게 맛볼 수 있는 우리의 전통음식이다.

  부침개는 갖가지 재료를 잘 버무려 앞뒤로 고르게 구워주면 프라이팬에 한가위 보름달이 뜬다. 사람 사는 세상이 뭐 별것이던가? 인생살이도 서로가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맛깔나게 살아가면 좋으려니 싶다.

 

(2018.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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