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파리내시경

2018.09.20 05:21

최연수 조회 수:6

이파리내시경

8ddcb046134220e1b8c9450af02b6d4f_2018092


키 낮은 그늘에서 올려다보면
바람의 각도를 고루 뒤집는 이파리들

한쪽 눈을 감은 내가
이파리 구멍을 통해 저쪽을 살핀다

예민한 햇살은 내내 스위치를 끄지 않고
붉어진 표정이 참았다가 토해내는 한 줄 호흡에
울컥 역류하는 물관

구월의 신트림이 메스껍다

눈치 빠른 저쪽도 눈을 찡그린 이쪽을 들여다본다
이미 걸어 나간 시간과 걸어올 시간을 단숨에 읽으려는지
이마에 손챙을 얹어 미간을 좁히는 낯익은 얼굴
방향을 트는 빛에
계절 속으로 들어온 통증이 오후를 움켜쥔다

잎을 구멍 낸 벌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늦게 들춘 병명에 당황한 바람 하나가 휘익, 떨어진다

햇살을 뒷배로 가진 나무처럼
안쪽을 비추는 익숙한 눈빛에 속내가 부글거리는데
더부룩한 시절을 비워내고 싶은 나무가
주섬주섬 심호흡으로 갈아입는다

한 줌 생각을 챙긴 내가 그늘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간다


- 최연수, '이파리내시경'


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면 벌레 먹은 작은 이파리 구멍이 보이고,
그 구멍 속으로 햇살이 비칩니다.
마치 내시경 불빛 같아, 계절이 울컥 역류할 것 같습니다.
볕도 좋고 바람도 좋은 계절, 어느새 한가위가 다가왔습니다.
오순도순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47 [김학 행복통장(68)] 김학 2018.09.11 35
2046 반딧불이축제 그리고 개똥벌레의 추억 한성덕 2018.09.12 33
2045 우리 아빠 이야기 김성은 2018.09.12 40
2044 캐리어 최연수 2018.09.13 46
2043 귀뚜라미 단상 임두환 2018.09.13 39
2042 굴러오는 탁구공 황춘택 2018.09.14 2
2041 내가 본 축구선수, 손홍민 한성덕 2018.09.15 4
2040 추석, 그 풍요로운 명절 김학 2018.09.15 5
2039 꽃범의 꼬리 최연수 2018.09.18 6
2038 문명이기의 반란 김길남 2018.09.19 2
2037 思 友 김현준 2018.09.19 4
» 이파리내시경 최연수 2018.09.20 6
2035 한가위 달 우전 임원식 2018.09.21 6
2034 하숙생 한성덕 2018.09.21 7
2033 가을맞이 준비 끝 이진숙 2018.09.22 6
2032 낙수정 사랑 김창영 2018.09.23 7
2031 내맘대로 김세명 2018.09.23 7
2030 그리운 군대시절 김학 2018.09.24 8
2029 대통령의 겸손 한성덕 2018.09.25 6
2028 누워서 미소짓는 해바라기 김삼남 2018.09.2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