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의 사는 이야기

2018.09.25 08:47

전용창 조회 수:7

우리 집안의 사는 이야기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 야간반 전용창

 

 

 

 

 민족의 대 이동이 시작되었다. 올 추석에도 전 국민의 3분의 2가 이동을 하니 고향 길은 고생길도 되지만 가족이 상봉하는 설렘을 안고 가니 축제의 길이기도 하다. 5천만 인구 중 36백만 명이 이동을 한다니 전 국민의 70%가 고향을 찾는 셈이다. 다행히 우리 9남매는 전주 근교에 살고 있으니 하루 발품이면 모두 다 만날 수가 있다. 54녀 중 둘째 형님만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의 서열은 형님 두 분, 누나 세분, 다음이니 6번째인 셈이다. 해마다 명절이면 나보다 서열이 높은 다섯 분을 찾아뵙는다. 그런데 올 추석에는 남동생 둘과 함께 찾아뵈었다.

 

 봉동 고향에 계시는 큰형님과 용진에 사시는 둘째누나는 부모님 산소 벌초를 하던 날 찾아뵈었다. 형님은 88세이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건강하셨는데 올여름이 워낙 더워서 견디기 힘드셨는지 많이 수척해 보였다.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한 형님이셨는데….  쩌렁쩌렁하시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전기장판 위에 누워계시며 “동생, 왔는가?” 하셨다.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아침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형님의 건강상태를 묻고 집안 남매들의 근황을 말씀드렸다. “벌초는 동생들과 조카와 함께 하고 올 테니 집에서 쉬세요.” 하고는 산소로 갔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형님이 전동스쿠터를 타고 산소까지 오신 게 아닌가? 제방길에 잡초가 우거져서 그냥 풀숲을 헤치고 오기도 힘들 텐 데 어떻게 오셨는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뵈는 형님의 효심에 감동했다. 형수님은 형님보다 한 살 많은 89세이신데 치매증상으로 큰아들이 모시고 있으니 형님은 시골집에 혼자 계신다. 6남매를 두고 증손자도 넷이나 보았건만 노년에는 홀로 계셔야 하는 형님이 측은했다.

 

  귀가길에 둘째누나 집에 들렀다. 누나는 우리 집에서 점심을 하지 식사를 하고 왔냐고 했다. 누나는 금년 80세이시다. 교회 권사님이신 누나는 유모차에 의지하여 바깥나들이를 하지만 “우리 동네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들 많아.” 하시며 항상 웃는 모습이다. 누나는 외아들과 며느리, 딸들 자랑을 한바탕 하셨다. “며느리가 전주에서 이곳 시골교회까지 날마다 와서 새벽예배에 참석하니 나도 안 빠지고 나가야 돼. 내가 못 나가는 날이면 어디가 아픈지 염려된다며 집에까지 와.” 우리도 조카며느리의 효심을 칭찬하고 예배를 드렸다. 나는 이 시대에 좀처럼 보기 힘든 고부간의 깊은 사랑을 보았다. 누나의 가족은 행복해 보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다운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다음 날 오후 동생들과 나는 우리 집에서 만났다. 차를 세워두고 한차로 이동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막내누나 집으로 갔다. 집에는 누나와 매형만 계셨다. 각자 가져온 선물을 전하려는데, 누나는 선물보다 먼저 동생들을 안아주었다. 한꺼번에 동생들이 오니 더 기쁘다고 하셨다. 혹시 식사 준비를 할까 봐 저녁은 큰누나한테 돼지고기 찌개로 부탁했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먹고 가, 금방 할 테니까.” “아니야 누나, 큰 누나가 돼지고기랑 벌써 사 왔을 거야.” 매형은 79세이고 누나는 77세이다. 매형은 농장 일로 봄에 손목 골절상을 입은 게 아직도 완쾌가 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고, 누나는 허리가 안 좋아 매사가 힘들다며 하소연을 했다. 나는 내일이라도 허리 치료에 용하다는 한의원에 모시고 간다고 하니, 누나는 명절에 손주들이 오니 음식 장만을 해야 한다며 명절 끝나고 가자고 했다. 아들 셋이 있지만 큰 아들은 서울에 있고 둘째는 격일제 근무로 시간이 없고 셋째는 명절 연휴에 가족이 제주도로 놀러 가니 못 온다고 했다며 심기가 편치 않았다.

 

  다음에는 외숙모를 찾아뵈었다. 어머니 형제 6남매 중, 어머니, 이모님, 그리고 세분의 외삼촌은 다 돌아가시고 인천에 92세의 이모님과 84세인 둘째외숙모님만 살아계신다. 우리를 반긴 것은 외숙모가 아니라 과년한 외숙모의 셋째딸이었다. 외숙모는 무릎 관절염으로 병원에 입원해계신다고 했다. 외숙모는 셋째딸과 함께 살고 있다. 믿음이 좋고 항상 정갈하신 외숙모는 집안도 깨끗이 가꾸고 사신다. 응접실에는 예수님 사진과 성경 테이프, 찬송 테이프가 있고, 소파 겸 황토 온돌침대가 놓여있다. 주무실 때를 제외하고는 그곳 침대 소파에서 하루 종일 보낸다. 과년한 딸은 홀어머니가 불쌍하다며 시집도 안 가고 눌러 있으니 외숙모도 나도 속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시집을 간다고는 하는데 지금도 나이가 50이 가까운데…. 여동생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크면 자신의 삶도 포기할까? 큰누나의 전화가 왔다. “동생 기다리다 우리는 밥도 못 먹었어.” “그래요? 누나, 금방 갈게요.” 여동생을 칭찬하고 외숙모의 쾌유를 빌며 나왔다.

 

 큰누나 집에 가니 요란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현관문 밖으로 매형도 누나도 나와서 맞이하고 막내딸도 뒤따라 나왔다. 누나는 딸 중 맏이이기도 하지만 보스 기질이 있다. 체격도 이목구비도 보통사람보다는 월등하지만 젊어서부터 또래의 대장격이었다. 내가 유년시절에 큰누나는 으레 나를 데리고 시골 동네를 누볐다. 그러니 집에 와서 아버지한테 꾸중을 들으면 나는 누나의 대변인이 되었다. 누나에게도 과년한 막내딸이 있다. 시집갈 생각을 안 하니 처음에는 밤이나 낮이나 걱정거리였다. 언젠가 결혼을 설득하는 나에게 “삼촌은 결혼하여 행복하세요? 자녀들 걱정은 없으세요?” 하고 묻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취미활동도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며 너무도 행복해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맞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그 딸이 부모님을 모시며 용돈도 주고 집안 살림을 다하니 이제는 누나도 매형도 포기하게 되어 누나 집도 웃음꽃이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홍어탕에 제육볶음, 그리고 햇김치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게 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둘째형님 집이었다. 형님은 위로 3남 아래로 3녀를 두었는데, 마지막 쌍둥이딸이 돌지날 무렵에 돌아가셨다. 당시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이었는데 가장 듬직하고 똑똑하여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셨는데 형님의 갑작스러운 사별이 얼마나 충격이 크셨길래 일 년 뒤에 아버지도 67세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84세의 형수님은 컴퓨터로 영상통화를 하시고 내가 건네 준 수필집도 안경없이 읽으시고 귀도 밝으시다. 지금도 게이트볼 선수로 시합에 나가 트로피를 받아 오신다. 형제가 아프다면 “왜들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라며 나무라신다. 정신력도 불교의 심오한 경지에 도달하여 얼마나 내공이 깊은지 가부간에 결정이 어려울 때면 “삼촌, 그렁개요.”가 형수님의 답이다. 그날도 형수님은 우리 형제의 이야기를 주로 듣기만 하시고 필요할 때 한마디씩만 하셨다. 응접실에는 큰딸 출산기념으로 형님이 사주었다던 선풍기가 돌아가고 태엽으로 밥 주는 벽시계가 9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형님이 돌아가신지 44년이 되었는데, 선풍기와 시계는 50년 전부터 지금까지 잘 움직이고 있다.

 

 우리 집안을 두루 다녀보니 행복한 가정은 자녀가 많은 집도 아니요, 훌륭한 자녀를 둔 집도 아니며, 가진 것이 많은 집도 아니었다. 행복한 가정은 고난을 자신의 탓이라고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는 집안이었다.

                                                       (2018.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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