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강단지

2018.09.30 07:11

한성덕 조회 수:23

요강단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어릴적 우리 동네는 황금(?)이 그득했다. 집집마다 두세 개의 보물단지가 있었다. 희한하게도 그 보물단지는 밤에만 보였다. 우리는 물론이요,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도 좋아하신 황금단지였다. 좋아하셨다기보다는 밤마다 꼭 필요로 하셨다.

  우리 집만 해도 두세 개의 보물단지가 있었다. 매일 밤 단지는 황금으로 넘쳤다. 눈비가 오거나 바람이 거센 밤에도 단지 안에는 늘 황금으로 빛났다. 우리 가족은 누구나 그 황금을 탐내거나 욕심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해가 뜨기 전에 반드시 버려야 하는 황금이었다. 불행하게 그 단지 안의 황금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되었다. 보물단지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이유다. 그렇지만 어제 사용했으니,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사용해야하는 전천후 보물단지였다.

  계속해서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단지를 깨끗하게 씻어두었다. 뒷마루 그늘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가 밤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했다. 황금을 담으려고 단지를 이 방 저 방으로 모시고 가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무시는 안방은 물론이요, 부모님과 함께 자는 우리 방까지도 들어오는 보물단지였다. 그 주가가 상당했는데, 다름 아닌 ‘요강단지’다

  나는 1953년 전라북도 무주의 첩첩산중 외진 곳에서 태어났다. 우리 동네는 제아무리 살펴봐도 앞뒤 좌우로 뺑 둘러친 것은 산뿐이다. 두메산골에 사니까 어려서부터 “성덕아, 요강단지 비워라!” 하시는 할아버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며칠 전에는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셔서 ‘요강을 비우라’고 소리치시는 바람에, 글감의 소재여서 환호했었다. 

 웃음을 선사하려고 노란색 오줌을 ‘황금’이라 표기했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 ‘요강’은 오줌을 누는 그릇이고, ‘단지’는 작은 항아리를 가리킨다. 놋이나 사기(沙器)나 토기, 또는 양은(洋銀)이나 스텐으로 만든 둥근 그릇에 위쪽은 넓게 뻥 뚫렸다. 여성은 앉아서, 남성은 무릎을 꿇고 소변을 보았다.

  어떤 때는 요강에 대변을 보기도 했다. 그런 밤이면 꽁보리밥과 고구마를 먹은 것이 뒤범벅돼 지독한 냄새를 피워 밤새 머리가 띵~했다. 물론 뚜껑을 닫아 두긴 하지만 그 향기(?)가 틈새로 삐져나와 방안을 진동했다. 산골의 초가삼간 집에 무슨 창문이 있겠는가? 공기청정기는커녕 선풍기나 환풍기는 상상도 못하던 유년시절이었다. 문풍지가 파르르 떠는 겨울에도 환기를 시키지 못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딴 방으로 갈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긴긴 겨울밤은 날이 새도록 냄새를 끌어안고 있어야하는 딱한 처지였다. 지금은 집집마다, 더 나은 집은 방마다 화장실이 있다. 무슨 요강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어릴 때의 요강단지는 각 가정의 필수품목 1호였다. 시집가는 딸에게도 요강은 일등 혼수품이었다니, 어지간히도 애지중지했던 보물단지임에 틀림없다.

  우리 집은 뼈마디가 시리도록 가난했다. 구걸하러왔던 흥부가 저고리를 벗어놓고 가야 할 만큼 딱한 처지였다. 칠흑 같은 밤에도 호롱불 하나쯤 켜두는 것이 사치였다. 그 좁은 방에서 밤이면 식구들끼리 오밀조밀 자야하는 고충, 이리저리 뒤척이는 바스락 소리에 코골이까지, 얇은 솜이불마저 서로 끌어당기느라고 싸우는 괴로운 밤, 형제가 많은 것이 축복은커녕 차라리 저주의 밤이라 말하고 싶다. 그래도 그 때가 ‘행복했다’면 거짓부렁이라고 매질을 당할까? 그런 날들을 참고 견디면서 오늘까지 살아 온 자신이 대견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런 가난이, 밤이면 심심찮게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탄생시켰다. 마음 놓고 소변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초저녁이다. 일단 잠자리에 들면 호롱불이 꺼지고, 모든 상황은 손으로 더듬어서 감지해야 한다. 잠결에 더듬더듬하다보면 엄마의 젖가슴도, 아버지의 얼굴이나 배꼽도, 동생들의 사타구니도 만지게 된다. 새벽쯤 되면 마지막 소변을 보려고 일어난다. 요강단지를 찾으면 오줌이 얼마나 찼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손가락을 살며시 넣어 보는 일이다. 오줌이 덜 찼으면 다행이지만 다 찬 경우엔 손가락에 온기가 느껴진다. 그 촉감은 1급수 시냇가에서 잡은 가재의 왕발에 물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순간적으로 움찔해지면서 몹시 당황스럽다. 그리고 오줌을 참고 참다가 요강단지 앞에까지 왔는데 어쩌란 말인가? 오만가지 인상을 쓰면서 팬티를 움켜잡고 잽싸게 뛰쳐나가, 마루에서 마당으로 포물선을 그렸다. 그 시원함은 장대비를 맞는 느낌이었다.  

  아련한 기억 속에 이런 황당한 일도 있었다. 잠결에 미처 확인도 안하고 요강에 무조건 실례했다. 오줌이 철철 넘쳐서 방바닥에 흥건하고, 식구들은 벌떡 일어나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 했다. 비몽사몽간에 한 짓을 어찌 하겠는가? 사실 그 정도는 별게 아니었다. 손으로 더듬더듬하다가 요강에 손이 쑥 들어가거나, 단지를 밀쳐내다 덥석 엎지른 적도 있었다. 삽시간에 밀려든 새벽시간의 쓰나미(?)에 속수무책이요, 난리였다. 지금처럼 수건을 쌓아놓고 살거나, 걸레가 이방 저 방에 넉넉히 있던가? 흠씬 젖은 이불이 그대로 걸레였다.

  요강단지는 희로애락의 요물단지였다. 하지만 단 하루도 닦지 않으면 온갖 세균이 번식한다. 그래서 오줌을 비운 뒤에는 빨래비누 칠한 지푸라기 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다. 그 오줌은 다른데서 온 게 아니라 내 몸속에 있던 내 것이었다. 오줌담은 그릇을 깨끗이 닦듯이, 각자의 속내를 닦고 또 닦으면 이 사회가 얼마나 밝고 아름다워질까?  

                                                                  (2018.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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