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길었던 어느 늦가을 하루

2018.11.10 04:59

김삼남 조회 수:4

짧지만 길었던 어느 늦가을 하루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 삼 남

 

 

 

 

 무술년 달력도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11월 첫주 일요일이다. 오늘도 습관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조간신문을 훑어보고 아침 산책을 나갈 시간이다. 서울 쌍둥이 손주 돌봄이로 서울에 있다가 주말이라 내려 온 아내가 오늘 또 상경한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한 참회기도 때문에 아침 산책이 늦어졌다. 참회기도는 종교의식을 떠나 우리만의 특별한 기도로서 영혼으로 굽어보는 세상 모든 신들께 사죄와 감사를 드리는 시간이다.

 

 오늘은 11월 첫주 교당행사로 단회가 있는 날이다. 첫주만은 꼭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예정된 산책과 식사를 마치고 9시반에 아내는 서울로, 나는 교당으로 같이 출발했다. 오늘은 또 원불교 대 행사가 있는 날이다. 원불교 15대 장응철 종법사가 1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16대 전산 김주원 종법사가 익산 원불교 총부에서 취임하는 날이다 

 셰계로 뻗어가는 원불교의 총 책임자의 취임식은 장대하고 엄숙하다. 식장에 참석치 못한 교인들은 교당에 설치된 화상을 시청하며 현장감있게 식에 참례한다. 새 종법사는 “나를 새롭게,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새롭게” 라는 취임법문을 밝혔다. 취임식 상영을 마치고 매월 첫주 단회 겸 진수성찬의 오찬으로 화기애애하게 법회를 마첬다.

 

 귀가하여 진안 텃밭에서 거두어들인 강황 약초 뿌리를 갈무리했다. 아내가 다듬고 씻어놓은 뿌리를 절편하여 전자레인지에 살짝 찐 뒤 건조시킨다. 건조되면 방앗간에서 분말로 만든다. 매일 강황 복용덕인지 혈액검사에 좋은 결과를 보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텃밭에 강황을 심는다.

 

 가을이 깊어 간다. 만추의 단풍구경 겸 옛날 추억을 그리며 흑석골로 간다. 공수내다리 네거리에서 도보로 간다. 흑석골은 20여 년 전 좁은 골목길이 덮개와 포장으로 대로가 되고 아파트가 들어서서 도시화되었다. 새로 개업하는 대형마트를 구경하고 옛날 절친한 친구의 s아파트를 굽어 보았다. 허름하게 남아 있지만 그 방에서 밤을 새우며 정담을 나누었던 지난날이 그립다. 아파트 옆 흑석골 개울에는 옛날 한지공장이 있었다. 지금은 완주 대승한지공장으로 이전되었지만 옛날 생 닥나무 껍질을 벗겨 울어낸 물이 지금도 흐르는 것 같다. 이 개울을 건너 가파르지만 높지 않는 산을 넘으면 바로 평화대로가 보이고 목련아파트가 나온다. 이 고갯길을 넘나들며 자주 친구 집을 찾곤 했었다. 좁은 고갯길에 노랑 은행잎과 빨간 단풍이 폭신하게 쌓여있다.

 

 낙엽을 밟으며 옛 추억과 고인이 된 배우 신성일을 생각해 보았다. 짧고도 긴 인생은 어쩌면 지는 낙엽의 일생과 닮은 것 같다. 고개를 넘으면 석불로에 도문화재로 지정된 석불이 안좌되어 있다. 석불을 뒤로 하고 내려오면 평화대로 건너편에 우리 집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옛날을 추억하며 늦가을을 만끽하는 여유로운 오후였다. 다섯시에 예고된 고 신성일 일생을 방송하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려고 길을 재촉했다.

 

 '한국 영화의 별이 지다. 별들의 고향으로 떠난 맨발의 청춘' 등 영화계에 남겨 놓은 거룩한 발자취와 아쉬움이 연일 티브이에서 방송된다. 영화에서 살다 하늘로 간 그의 삶을 그 옛집 영천 산골 성일가의 생활상을 감명 깊게 시청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땅에 묻히지만 고인은 오늘을 예상했는지 성일가 울안에 자기의 묘소까지 지정 관리하는 것을 생생히 보여 주었다. 전무후무한 배우이자 영화인 신성일의 천부적인 소질을 보고 신상옥 감독은 그 예명을 새로운 별이 되어 제일가라는 신성일(申星一)로 작명해 주었다 한다. 주연을 맡았던 영화만 해도 507편이다. 연기뿐 아니라 훌륭한 면모는 영원히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으리라.

 

 그의 생전 쓰라린 체험은 국회의원이란 정치풍토에서 2년간 옥고를 치른 일이다. 옥중에서도 200여 편의 독서로 인생을 섭렵했으니 귀중한 인생의 한 부분이 되었으리라. 아끼고 사랑하고 자랑했던 영천 성일가를 어떻게 잊고 떠났을까, 사랑했던 2마리의 애완견과 타조는 이제 누가 돌볼 것인지 모르겠다. 멋지게 살았지만 일년 동안의 투병 끝에 훌훌 떠난 말년이 아쉽다.

 

 아내 엄앵란의 말처럼 인생은 연기(煙氣)와 같다. 형체없는 연기처럼 살다가 연기로 승천하여 구름처럼 거침없이 훨훨 날아 다닐지 모른다. 아쉬운 것은 강철처럼 강인한 건강을 자랑했던 고인이 폐암 3기까지 왜 잠자고 있었는지 수수께끼 같다. 마지막으로 유족에게 남긴 말은 '참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하다.'라고 했다.  어떻게 모든 것을 잊고 떠났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티브이 시청을 마치니 내 삶의 긴 여로가 주마등처럼 스쳤다. 건강은 건강할 때 살피라는 말이 새삼 진리임을 깨닫는다. 텁텁한 막걸리 잔을 비우며 늦가을 우수에 젖는다.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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