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8 02:46
장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세명
5일장 장날에는 각지에서 장돌뱅이들이 모여든다. 소와 돼지가 거래되고, 거간꾼도 한 몫 챙긴다. 아버지가 소를 팔러 장에 가실 때 나를 데리고 가셨다. 약장수가 굿을 하고 구경꾼이 모이면 만병통치약이 팔린다. 난생 처음 보는 왁자지껄한 장터는 어린 내 눈에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장터에 가면 엿장수 가윗소리, 소 울음소리, 개짖는 소리, 닭 우는소리, 시비소리로 넘쳐난다. 그날은 돈이 돌고, 곡식이 돌고, 인심도 돌아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조상님 제삿날이 다가오거나 집안 대소사에는 꼭 장엘 간다. 닷새마다 열리는 장바닥은 북새통이다.
버스가 없던 시절 겨울 찬바람을 안고 시오리 길을 걸었다. 콩, 팥, 잡곡 등 돈이 될 농산물을 지게에 지고 온다. 고장난 농기구는 대장간에서 고치고, 찢어진 고무신도 때우며, 깨진 솥도 때운다. 1960년대 장돌뱅이의 삶은 그랬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은 무싯날이라고 했다.
지난날 장꾼처럼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던 일들이 떠오른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 술이 돌고, 술을 먹으면 시끄럽고, 시끄러우니 싸움을 한다. 이런 악순환은 장날마다 계속된다. 자연히 사건사고가 많았다. 삶의 현장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자면 힘든다. 파장에는 항상 지서가 시끄럽다. 시골 지서는 삶의 중심에 있었다.
이 짓 안하면 못 먹고사나? 자괴감이 들어도 아이들 생각에 참는다. 항상 잠이 부족했다. 집을 나서는 길은 돌아오기 위해 열려있다. 그곳이 설령 전쟁터 같은 곳이라도 돌아올 곳이 있어 버틴다. 아옹다옹 서로의 주머니를 열고 닫는 곳이 장터가 아니던가?
퇴직하면 은둔자처럼 유유자적할 줄 알았건만, 막상 무싯날이 되풀이 될수록 남루한 옷을 걸친 듯 위축되고 무료하고 쓸쓸하기만 했다. 만년 월급쟁이일 줄 알았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장터 같은 직장에서 물러났다. 이제는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와 파장하고 난전의 문은 닫혔다. 은퇴는 쓸쓸한 법, 파장의 장터는 가을바람 같기만 하다.
(201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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