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26 15:03
할 일 없는 닭처럼/ 전희진
차가운 체온을 받아줄 온기가
이 지구상에 미리 와 있다는 걸 아는 순간
무거운 발이 올려놓을
또 다른 무거운 발이 미리 와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침대의 감정에게 감사하고
추워진 날씨에게 찬 마룻바닥에게 감사한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당신이 예전엔 이러지 않았다고, 분명 변한 거라고 말하지만
세상이 있어서 세상이 바뀔 수 있고
당신이 있어서 당신이 변할 수 있으니
새로운 세상 변한 모습의 당신을
편한 의자처럼 느긋이 깔고 앉아 늦가을로 가는 볕을 쪼인다
할 일 없어 보이는 닭처럼 생각 없이 읊조리는 여가수처럼
헐벗은 나뭇가지를 비추던 달빛이
희고 고운 제 발을 담벼락에 가만가만 기대는 밤이다
--미주문학 201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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