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

2019.02.01 05:33

곽창선 조회 수:4

 손 편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곽 창 선

 

 

 

 

 따스한 창가에서 아내와 지난여름 싸운 얘기를 하며 웃었다. 위기였는데 내 편지를 받고 마음이 변했다고 한다. 우리부부가 해로偕老해 온 지도 벌써 40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고비 고비 숱한 고개를 넘기면서 매사 어찌 순조롭기만 했겠는가? 때론 갈등을 제때 풀지 못하고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속앓이를 할 때도 많았다. 그중 지난여름 겪은 부부갈등처럼 힘든 기억은 없었다.

 

 벌써 봄이 온 것 같다. 바람 끝은 차도 햇볕은 한결 따스해져 실내엔 완연한 봄기운이 돈다. 베란다에서 화분을 손질하던 아내가 새순이 돋는다고 좋아한다. 평소 음악을 즐기지 않던 내가 헨드폰에 저장된 음악을 틀어 주었다. 비발디의 '봄'이 잔잔히 흐른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지인들이 보내주는 카톡 덕에 가끔 나도 몰래 음악을 듣곤 한다. 습관이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헨드폰을 뒤져서 활용하면 만사형통이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수은주가 40도를 오르내리던 지난해 8월 어느 날, 더위에 지쳐있을 때였다. 더위를 식히려 부채를 휘둘러도 흐르는 땀은 그칠 줄 모른다. 평소 기관지염으로 몸이 예민해져 선풍기나 에어컨 덕을 볼 수도 없었다. 화장실에 다녀나오던 아내가 짜증을 냈다. 화장실 좀 깨끗이 쓰라고 투덜댔다. 요즘 예사롭게 하는 말도 짜증스럽게 들린다. 날씨가 덥고 불쾌지수가 높아 자칫 불화로 엮일 수가 있어 밖으로 나왔다. 살인적인 더위에 지열까지 더 하니 쉴 만한 곳이 없어 집으로 다시 들어가니 아내는 먹던 음식도 거실 안에 방치한 채 낮잠을 즐긴다. 아주 원시적 자태로 편안한 자세다. 순간 역겨움이 치솟았다. 볼멘소리로 먹은 거나 치우고 에어컨 좀 끄고 밖에 나갔다 오라며 툭 쏘아 주었다.

 

 이 말 한마디가 화근이 되었다. 대화가 끊기고 냉전이 며칠 째 지속되었다. 평소 생활하며 하나둘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이다. 몹시 화가 난 듯 말도 없고 밥도 혼자 먹었다. 이 지긋지긋한 더위 속에 마누라까지 파업상태니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살아 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런 것을 얕잡아 골탕을 먹이나 싶으니 야속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라는 말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다. 요즈음은 흙담보다 더 굳어진단다. 더구나 여권女이 높아져서 여심은 날개를 달고 남권男權은 날개를 잃고 설자리가 비좁단다.

 

 속에 쌓인 스트레스에 화까지 치미니 정말 힘들었다. 눈치를 보니 아내는 느긋했다. 아쉬울 것 없다는 듯 여유롭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겐 아쉬운 것이 늘어났다. 마음은 초조해졌다. 은근히 불안이 엄습해했다. 이렇게 지내다 남들처럼 불행한 말로가 오는 게 아닐까하는 조바심에서였다. 젊은 시절에는 부부불화가 쉽게 해소되었는데 늙게 되자 이것마저 여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니 답답한 마음이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더위는 더 기승을 부리고 온몸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 거렸다. 어쩌랴, 화해방법을 찾아야지. 순간 부부싸움은 오래 가지 말고 빨리 풀어 버리라고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시간을 끌어봐야 손해였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해 보았다. 화해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화가 제일인데 피하니 어쩌랴? 어설피 잘못하면 화만 키울 뿐이다. 고민 끝에 젊은 시절 좋아하던 손 편지를 써 보기로 했다. 책상 앞에서 어떻게 쓸까 궁리해보지만 머리만 복잡해질 뿐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살아온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현재를 반추해 솔직담백하게 써 보았다.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 겨우 끝을 맺었다.

 

 Dear my friend!

 

 오랜 만에 편지를 써 보려니 두서가 없구려. 이해해주시오. 정성으로 내 마음을 전하려니 탓하지 말고 끝까지 읽어 주시오. 내가 미덥지 않아 걱정하시던 부모 곁을 떠나며

 “막내딸 걱정하지 마세요. 보란 듯 잘 살게요.” 라며, 당신 앞에 놓인 꽃길을 마다하고 내게 왔지요. 그때 그 모습이 나에게 희망이요, 큰 보람이었지요. 그 뒤로 단칸방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힘들고 어려워도 내색 없이 살아준 당신, 정말 감사합니다. 그 곱던 당신 얼굴엔 어느덧 주름투성이요, 머리는 반백이니 가슴이 아프구려. 난 당신이 나를 선택하며 '부모님께 드리던 결심'을 금과옥조로 삼아 가슴에 담고 살고 있답니다. (중략)

 요즈음 당신의 사랑이 잡초처럼 번지니 삶에 의미를 잃어 몹시 슬프다오. 당신은 내 마음의 빛이요 소망입니다. 쓰러지지 않게 나를 붙잡아 주오. 쓰러질 것 같습니다. 실망을 주어 미안하오. 내 단점을 고치려 해도 잘 안 되는구려. 내 급한 성미 말이요뒤끝이 없는 것은 당신도 잘 알지요? 웃는 낯으로 상냥한 말을 써보려 노력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지만 계속 노력할 테니 지켜봐 주시구려. 때가 되면 고목나무에도 찬란한 꽃이 필 테니까요.

 당신 곁에는 내가, 내 곁에는 당신이 꼭 필요한 존재요. 서로 한 발 물러서서 손잡고 건강히 삽시다. 의지할 곳은 오직 부부뿐이라오. 살다가 누가 먼저 떠나거든 뒷마무리 잘 해줍시다. 여보, 미안해요.

  From C S K.

 

 편지를 봉하고나니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꽁했던 마음도 서운함도 모두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모두 내 불찰이라는 생각뿐이고 미안함이 가득했다. 이것이 노년에 느끼는 철든 생각인가 보다. 이제 남은 것은 아내 몫이다. 내 진심이 여과 없이 전달되기를 빌 뿐이다. 어떻게 전달할까? 직접 주기는 그렇고 식탁에 올려놓기도 쑥스러웠다. 생각 끝에 승용차 앞좌석에 놓인 효자음악회 초청장에 끼워 놓았다. 조금 후 아내가 자동차 키를 찾더니 밖으로 나갔다.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아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밤 10시쯤 현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죽이고 거실 동정을  살피니 조금 후 요란한 음악이 흘렀다. 전축에서 나오는 음악이 아니라 헨드폰에서 울리는데 소음이 많이 들렸다. 아마 음악회에서 듣고 온 노래를 다시 듣는 것 같았다. 가슴이 뭉클했다. 아내의 마음이 돌아 온 것이다.

 

 포도주 한 잔을 준비해서 식탁에 마주 앉았다. 볼륨을 높여 대중가요 ‘만남’ 을 틀고 지난 스트레스를 갑론을박하며 여과 없이 풀어버렸다. 태풍으로 바닷물이 정화되듯 마음에 쌓인 무거움도 일순 날아간 듯 개운했다.

 

 부부싸움은 참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다. 적당히 부디치며 스트레스를 털어 버려야 할 때도 있다. 오래 쌓이면 화를 부른다. 그러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나 생체기가 될 말은 절대 금물이다. 싸우는 것 못지않게 해소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이렇게 손 편지로 아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2019.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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