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인간의 당, 카자흐스탄

2019.02.26 05:03

정남숙 조회 수:5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서울에 올라와 작은손녀를 꼬드겨 국립중앙박물관 나들이에 동행하기로 했다. 언제나 작은손녀는 제 부모 못지않게 나를 챙기고 있어 나의 청은 언제나 오케이다. 그런 손녀가 중학생이 되고난 뒤, 나는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었다. 약속한 날 아침, 부지런히 외출준비를 하는데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 선약이 있었는데 나 때문에 사정을 하는 것 같았다. 손녀를, 우선순위인 친구에게 양보하고 혼자 길을 나섰다.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 출입이 어설프지 않다.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들르지 않으면 숙제를 못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마침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우리 봉사자들에게 ‘카자흐스탄 특별전’ 무료티켓 2장씩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연례행사처럼 보고 싶은 호기심 외에 특별한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손녀 없이 혼자이기에 더욱 여유롭게 오늘 하루를 즐기기로 했다. ‘카자흐스탄 특별전’은 기획전시실이 아닌, 본관 1층 안쪽에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 여러 공화국들과 함께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소련에서 독립한 무슨 탄, 탄이라 부르는 나라 중 하나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사할린에서 강제 이주당한 우리민족들이 ‘카레이스키’, ‘고려인’이라 불리며 살고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다문화인들 중 ‘우즈베크스탄’과 연이어 나오는 ‘카자흐스탄’인이 많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을 알리는 전시로만 알았다.

 

  제1부는. ‘대초원 문명, 황금으로 빛나다.’였다. 이번 전시의 대표적 유물인 기원전 4~3세기, 이식(Issyk) 쿠르간지역에서 출토된 ‘황금인간’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적지의 황금문화재들, 정교하게 장식된 동물모양 금관과 관모장식, 문자가 새겨진 그릇 등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초원에서 이룩한 물질문명과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2부 ’초원, 열린 공간‘은 같은 시기, 동부 베렐 쿠르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중앙유라시아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지역 일부를 포함하는 광활한 지역이다. 사람들이 지나간 곳은 길이 되었고, 그 길을 따라 문화가 전파되어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와 역사를 일구며 살아온 곳이라 한다. 3부 ’유목하는 인간, 노마드‘다. 건조한 초원과 사막, 산악 지대가 펼쳐진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여름에는 초원에서,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온화한 반사막과 사막으로 이동한다.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거주 공간 이동식 숙소인 ’유르트‘를 장식하는 카펫과 공예품, 각종 마구와 유제품 등은 유목민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영상실에서는 카자흐탄의 대초원문명과 유라시아의 중심에서 정착과 이동을 반복하며 살아온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시작은 의식적으로 관람에 나선 것뿐이었다. 그러나 부끄러운 나의 무지와 편견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카자흐스탄은 내가 생각한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27배가 넘는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이며, 유물은 기원전. 4~3세기의 찬란한 문화를 지닌 것이었다. 기원전, 15세기 몽골제국을 구성한 4개의 한국(汗國) 중 하나인, 카자흐족()으로 불리던 샤이바니일가()가 독립해 세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라였다. ‘카자흐’는 터키어로 ‘반도(叛徒)’를 의미한다고 한다. 러시아에 점령당하고,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되었다가 소련의 붕괴로, 1991년에야 완전 독립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우리나라와 같이 많은 외세의 침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해에 우리나라와 북한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수립한 나라이기도 하다.

 

  전시말미에, 에필로그 영상 앞 땅바닥에 그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1937년 스탈린 정부가 일본사람과 닮았다는 이유와, 스파이역할을 할 수 있다는 명목으로 강제 이주시킨, 한복 입은 고려인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녔고,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는 나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의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 최대 항구도시다. 무역과 교통, 어업, 군사기지 등 다방면의 기능을 갖춘 러시아 혁명사에 큰 족적을 남긴 20세기 세계사의 중요 사건들이 벌어졌던 곳이다. 무역항이 발달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물자가 유통된다. 1903년 시베리아철도가 개통되면서 대륙의 경계를 허무는 교통도시로 발돋움하여, 지리적으로 유럽에 속하지만 우리민족에게 낯설지 않은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던 연해주의 중심도시이기 때문이다.

 

 1860년대 조선에서 흉년과 수탈이 계속되자,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로 이주해서 토지를 개척하며 정착했다. 한일합병 뒤에는 일제식민통치의 압제를 피하거나, 민족해방운동을 위한 근거지로 이민이 더욱 증가했던 곳이다. 그러나 한인들은 1930년대 말 소련당국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사할린에는 일제강점기 말에 징용된 한인들이 많았는데 1945년 일본과 소련이 국교를 회복하면서, 사할린에 있는 일본인은 다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한인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귀환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착하게 된 것이다. 1931년 일제가 러시아 국경 부근에 만주국을 건설하고, 사회주의 소련과 대치하자, 1937년 스탈린은 생김새가 비슷한 고려인들을 일본의 스파이라는 이유로, 시베리아열차에 태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것이다.

   

  황무지에 뿌리내린 고려인들을 만났다. 비행기로 4천여km 날아야 갈 수 있는 먼 나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이곳에 우리말을 쓰고 삼시세끼 김치를 먹는 이들이 12만 여명이 살고 있었다. 1860년대부터 러시아 연해주지역에 농업이민으로 시작한 고려인들, 그들은 한국어신문과 잡지, 극장을 운영할 정도로 독자적인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연해주 신한촌은 일제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의 배후지이자 독립군 양성의 터전이었다. 청산리싸움의 김좌진봉오동전투의 홍범도 장군의 승리도, 이러한 고려인들의 참여와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한다. 당시 17만 명이 넘는 고려인을, 124개의 수송열차에 태워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강제이주 도중, 혹한과 굶주림 등으로 수천 명이 죽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흩어져 살아왔을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의 고려인은 경제와 학문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처음에는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지만 특유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오늘날 카자흐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발돋움하며 살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국민의 0.6%에 불과한 고려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카레이스키’, ‘고려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살 길을 찾아 국경을 넘어 러시아 동쪽 끝 연해주에서 농사를 지었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던 고려인들의 후손이다. 현지인들은 고려인을 일컬어 ‘부자’, ‘근면, 성실한 사람들’, ‘가족끼리 화목한 민족’이라고 한단다.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타 시에는 전체 고려인의 1/5 이 거주하며, 카자흐스탄 최대은행의 은행장과, 전자유통업에서 업계 3위 안에 드는 기업들도 고려인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되는 순간에도, 고려인 1세대부터 시작되어 아직도 우리 문화의 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고려극장에는 현재 배우, 가수, 무용수, 스텝을 포함 해, 50명이 일하고 있다. 조국의 말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인터뷰 장면을 몇 번이나 되돌려보기를 하며, 우리나라 남북의 철로가 이어지면 가까워질 것 같은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의 ‘황금인간들‘에게, ‘카레이스키’, ‘고려인’을 잘 보살펴 달라 부탁해 본다.  

                                             (2019.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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