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같은 남편과 여우같은 아내

2019.03.06 06:47

황복숙 조회 수:18

곰같은 남편과 여우같은 아내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수필창작반     

 

 

 

   곰과 여우가 만나 살고 있습니다.  새날 새해를 맞았습니다. 2019년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 찍소, 벙어리라는 남편과 여우, 백여우, 촉새라는 별명울 가진 아내입니다. 여우같은 아내는 곰같은 남편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하고 곰같은 남편은 여우같은 아내를 위해 전을 부칩니다. 무뚝뚝하지만 속이 깊은 남자입니다. 싹싹하고 눈치 빠른 여자는  불에 덴 남편의 손가락을 불어 주고, 날작지근한 어깨를 주물러주며, 싱겁지도 짜지도 않게 간을 맞추며 내일을 살아갑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 많이 불안했습니다. 언제쯤, 누구랑 짝을 맞추게 될지 궁금했지만, 이렇게 곰과 여우가 만나 가슴이 따뜻하고 뭉클한 삶을 삽니다. 어슴푸레한 수증기 같은 사랑이 마음 안쪽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삶을, 성질이 급하여 잘 삐지는 곰과 애교 없는 여우가 만나 살아 온 지도 어느새 40년이 됩니다. 한동안 여우는 이름을 잊고 살았습니다. 잊어질 쯤에 이름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러는 요즈음에 아무개 엄마에서 아무개님이더니 아무개 선생님으로 부르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감동입니다.  시장에서는 아주머니요 백화점에 가면 고객님, 미용실에 가면 사모님, 길 가다가 발 헛디뎌 부딪치면, 아니 이 아줌마가 정신이 나갔나하며 부르는 익숙한 호칭 아줌마입니다. '선생님'이라고 하면 선생님이 되고, '사모님'이라고 부르면 사모님인 척하고, '아줌마'라고 부르면 아줌마가 됩니다. 거기 호칭이 새로 더 불었습니다. '장모님', '어머님', 또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장모님, 어머님, 할머니 소리를 들으면 염치없지만 뿌듯하고 기쁩니다. 쓸쓸하지 않고 포근하게 들립니다. 숱한 사람들이 말하는 인생의 말년에 또 하나의 이름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하나 더 불려진 호칭은 'ㅇㅇㅇ환자님'이다. 아직은 그때가 아니니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배우고 글을 쓰게 되면서 이름을 내 이름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찾게 해 준 곰 같은 남편의 마음이 고마워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곰 같은 남편이 글 배우러 가는 날 늦으면 태워다 주고, 비 온다고 데려다 주는 늙은 곰은 오늘도  몇 개 남지 않은 흰머리카락을 훑으며 정답게 대화를 나눕니다. 몇 월 며칠날 행사가 있고, 몇 월에는 문학기행을 간다고 하니, "아, 요즘 황 선생 잘 나가네!" 속삭이며 잠자리를 청합니다.

 

   일주일 전의 일입니다. 1227일 밤 퇴근길에 백제대로 종합경기장 야구장 앞에서 음주운전을 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교통사고 났다고 남편이 전화를 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아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평소에는 주님을 찾지도 않으면서 어려운 일 힘든 벽이 가로막을 때마다 매달리면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 주십니다.

 "하느님, 많이 다쳤다면 어떻게 해요? 조금 다쳤겠지요? 주님만 믿습니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주님께 다짐을 했습니다. 달려가 보니 앞지르기 하려고 차선을 변경하던 상대방 차가 우리차를 박아 인도에 쳐 박히고 몇 십년 된 은행나무가 뿌리가 뽑히고 차는 완전히 부서져 폐차처분을 했습니다. 음주운전자는 당당하게 술마시고 운전을 했다고 경찰관에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멀쩡했습니다. 병원에 가 보면 어떻겠냐고 하니 아픈 곳이 없는데  왜 병원에 가느냐고 반문을 했습니다. 사위와 아들이 서둘러 중고자동차 매매상에서 차를 구입했습니다. 지난번처럼 새차를 뽑은 건 아니지만 마음은 기쁩니다. 사고를 당한 날 차를 폐차장으로 견인해 가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 밤중이라 딸네랑 아들네 에게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말하니 딸 둘은 울면서 말합니다. ‘아빠 하마터면 아빠 못 볼 뻔했어요, 울었다 웃었다 아빠, 아빠하면서,’ 보험회사에서 랜트해 주어 타다가 오늘 차를 구입했습니다. 대문 앞에 세워 둔 새로운 애마를 보다가 들어와 생각하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 옵니다.

 , 정신이 바짝 듭니다. 다쳤다면 입원을 하고 남편이랑 저랑 아이들이 고생을 할 텐데요, 하느님께서 우리가족을 사랑해주시어 자동차만 망가졌습니다.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어지니 어깨 다리가 쑤시고 아립니다. 모아 둔 돈이 비워져 허전하고 떠난 애마를 사랑해 주지 못해 아쉬웠지만 새 애마를 구입했으니 다행입니다. 살아 가면서 귀한 만남을 모르고 스치며 살아 왔습니다. 앞으로의 새날은 반가움으로 맞으려고 합니다. 해가 떠서 일어 날 때가 됐다고 잔소리를 항는 대신 싸리비질을 하시던 아버지, 잠결에 아버지 비질 소리가 들리는 아침입니다. 아버지 소리가 들려 대문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아버지, 며질 전에 박 서방 큰일 날 뻔했어요.'하고 말씀 드리니  ‘걱정 말거라. 박 서방은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공기가 훈훈해지고 아랫목을 따뜻하게 데우며 오늘도 곰 같은 남자와 여우 같은 아내는 곰처럼 여우처럼 아늑하고 푹신하게 살고 있습니다. 4월이면 곰과 여우가 함께 산 지 40년을 맞는 달입니다.

 

                                                   (2019.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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