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물처럼

2019.03.09 02:40

나인구 조회 수:5

[금요수필] 두물머리 물처럼

 


나인구나인구

불가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뜻이다. 마음속에 번뇌,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욕심 등을 벗어 던져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그러면 착득거(着得去)하라 한다. 즉 지고 가란 뜻이다. 이 말은 조주 스님이 엄양 스님에게 하신 말씀이다.

내 안의 집착을 버리고 자세를 낮추며 내 안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기 위한 끝없는 담금질을 통해 빈 그릇이 될 때 그 안에 생명수가 넘쳐흐를 수 있다. 비워냄이 없는 채움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들은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지나온 자리를 둘러보고 반성해볼 때가 종종 있다. 욕심, 집착, 갈등 등으로 후회스러운 삶이 얼마나 많았는가?

언젠가 전주 추천대교를 지나갈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전주천’이나 ‘삼천천’을 거닐 때는 그 흐르는 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추천대교 옆을 지날 때 갑자기 “이렇게 많은 물이 어디서 흘러들어오지?”하고 생각해보았다. 전주 천과 삼천 천의 발원지가 어디인가? 모악산과 저 멀리 임실이나 상관의 골짜기를 내려와 전주 시내를 관통하여 추천대 두물머리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와 시가지의 오염되고 악취가 풍기는 냇가를 어떻게 지내 왔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추천대교 아래에서 만났으니 지난 모든 것 버리고 우리 한마음으로 넓은 만경강으로 가자한다. 그곳에 가면 용담이나 대아리, 완주 동상면 밤샘에서 흘러온 물들과 만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어울려 유유자적하게 건강한 강물로 흘러 바다를 꿈꾸게 될 것이다.

나는 퇴직을 하고 나서 처음에는 아침이면 무의식중에 넥타이를 매고 옷을 챙겨 입었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어디를 가려느냐고 묻기에 “출근준비를 한다.”고하며 웃었던 때가 있었다. 이후 흐르던 물이 고여 있을 수만 없어서 노인복지관, 교회, 그리고 평생교육원 등을 찾아다니며 아직도 비어있는 지식의 그릇에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서 부지런히 나다닌다.

상처로 얼룩진 지난날, 욕심으로 집착했던 마음을 다 비워버리고 살 요량으로 하루하루를 살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물질이야 내려놓을 만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마음속에 채우고 싶은 여러 욕망은 아직도 다 내려놓지 못한다. 지금도 욕심을 부려 원망이나 미움으로 얼룩진 삶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욕망에 아름다움을 더하면 소망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욕망보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소망을 바라기에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이 우주와 합일된 아름다움을 획득하고 그것을 관조함에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은 현실에 너무 집착하여 소망과 욕망을 서로 혼동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도 모른다.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는 부질없는 욕망을 자제하고 아름다운 소망을 기원하여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포근한 삶을 이루었으면 하고 또 소망해 본다.

흐르는 두물머리 물처럼 함께 어울려 옛일을 잊고 그들과 어울려 사는 일이 즐겁고 건강하게 흐르는 강물이 되고 싶다. 모든 것 버리는 방하착의 심정으로 살고 싶다. 내가 버리고 죽어야 산다는 진리를 터득하면서 함께 손잡고 늘그막의 사람들과 두물머리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며 살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먼저 손 내밀면서-.

 

* 나인구 수필가는 <대한문학>에서 시, 수필로 등단한 뒤 전북문인협회 이사, 전북수필문학회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 대한문학작가회 회장으로 전북수필문학상, 문맥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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