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은 곧 은총

2019.03.25 19:05

김창임 조회 수:6

살아있음은 곧 은총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운동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남편은 서재에서 수필쓰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남편의 입장을 이미 다 알고 있지만 나는 운동하는 것이 먼저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오늘 오후에 강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고 했다. 그러니 미루다가는 운동을 못할 것 같아서 남편을 조르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내 말에 동의하며 뒤를 따랐다. 춘분이 지나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봄이 완연해지는 것 같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지 모처럼 주위가 산뜻하고 공기가 맑아 상쾌하다. 정읍사공원으로 가고 있는데 유치원 울타리 개나리꽃이 ‘지금 꽃을 피울까, 아니면 조금 있다 피워볼까’ 망설이는 것 같았다. 꽃들도 지난해처럼 생각 없이 피었다가는 추위 때문에 그 멋진 자태를 뽐낼 수가 없을 테니 눈치를 살피나 보다. 울밑에서는 노란 민들레 몇 포기가 나를 반기고파릇파릇 아기 손을 내미는 쥐똥나무의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도로 옆을 보니 백목련이 피었는데 나는 자목련이 더 아름답다. 보랏빛 옷은 자신이 없어서 잘 안 입지만 꽃만큼은 보랏빛 꽃들을 아주 좋아한다. 자목련, 라일락, 붓꽃, 꽃창포가 보랏빛이어서 그들을 아주 좋아한다. 품위 있고 고상하며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평소에 남편은 체구가 작게 느껴지는데 내가 운동할 때만큼은 조금 크게 느껴져서 그를 의지하고 가야한다. 그래서 남편의 손을 꽉 잡고 걷기 시작하면 40분 정도의 걷기 운동은 금방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둘째아들이 아버지한테 ‘어머니의 안전에 대한 것’을 신신 당부를기 때문에 남편은 나의 보호자 역할을 충분히 하려고 애를 쓴다.

 공원에 도착한 남편은 나와 같이 의자에 앉아서 햇볕을 쬐면서 쉬는데 손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쓸데없는 것들이 카톡에 와서 아주 귀찮게 하네.”라고 했다. 나는 “그것도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지요.“ 라고 말했다.

 대체로 보험을 들어 달라, 물건을 싸게 팔 테니 사라, 등등의 카톡이 너무 많아서 귀찮을 때가 있어 나도 지우느라 힘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오는 것도 아직은 내가 살아서 지구상에 현존하기 때문이고, 거기다가 돈도 매달 수입이 들어와서 그들도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는다. 그러니 알고 보면 방금 남편이 한 말도 행복한 푸념이다. 내가 죽었다거나 아니면 아무 수입도 없는 상황이라면 어느 누구고 말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손전화에 카톡이 오면 누구라도 댓글을 친절하고 성의껏 쓰는 버릇이 있다. 보내는 사람도 나를 특별히 생각하고 보낼 테니 말이다.

 어느 날이었다. 사랑스런 남편의 카톡이 왔다. 여느 때와 같이 완전히 다 읽고 ‘감사하게 잘 읽고 감동을 많이 받았다. ’고 답장을 보낸 적이 있다. 나는 남에게 카톡을 보낼 때는 너무 좋아서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친구와 같이 공유하여 공감하고 싶을 때 보내곤 한다. 그래서 남편도 그랬거니 하고서 그 카톡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 카톡에 너무 감동을 많이 받았다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그래? 나도 그래서 보냈습니다.” 그래야 되는데 나에게 보내면서도 아무 내용도 모르고 보낸 눈치다. 물론 남편은 붓글씨 쓰랴, 글쓰기 하랴, 몹시 바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성의 문제다. 아내가 살아있고 반갑게 받아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는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부부끼리라도 예의가 아니다.

 

 글을 다듬다가 창가를 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울방울 옥구슬 같은 물방울이 창틀에 매달려 있으면서 ‘오늘 비가 내렸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일기예보가 딱 맞았다. 억지로 나를 따라서 운동을 한 남편이 “내 말을 듣기 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누나’ 말만 들으면 손해는 없어요.”그렇게 말하니 남편도 웃지 않을 수가 없나보다. 아무리 이렇게 체구가 작고 272일이나 늦게 태어난 아내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볼 때가 없었다는 것을 다 알기 때문에 나는 당당히 ‘누나’ 라고 한다조그마한 아내가 그렇게 말하면 웃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하얀 이를 자랑하며 매력이 넘치게 웃는 남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날은 TV를 보다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우리 손녀처럼 TV광고 ‘요기요’ 하는 여자 연예인처럼 흉을 내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웃는다. 내 앞에서는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천진난만하게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남편의 모습은 혼자보기엔 너무도 아깝다. 한 번만 더해보라고 졸라도 그것도 기분이 나야 하는가 보다.

 나는 상대방을 웃게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말만 하고 살아야 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삭막하여 싫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라도 폭소가 터지면서 살려면 할 수 없이 비정상적인 말을 해야 한다. 이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데 우리가 웃고 사는 것을 그 누가 막겠는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삶, 사치하지 않고 소박하게 사는 삶, 누굴 속이지 않고 누굴 증오하지 않으며, 자기 안을 늘 채굴하며 반조하는 삶이 잘 사는 삶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이 귀한 시간을 항상 웃으며 건강하게 살고 싶다.

                                                 (201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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