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좀더 일찍 읽었더라면

2019.03.26 05:51

임두환 조회 수:6

이 책을 좀더 일찍 읽었더라면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임두환

 

 

 

  어느 날이었다. 고등학교 선배이자 재전진안읍(在全鎭安邑)향우회장인 J씨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와는 KT&G에서 오랜 동안 근무하며 신뢰를 쌓아온 사이다. 평소에도 내 고장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재전진안읍향우회장을 맡고부터는 더욱 열심이었다. 막상, 회장을 맡아보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힘을 보태달라는 부탁이었다. 잠깐 머뭇거리더니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란 책자를 전하고 가는 게 아닌가.  

 

  J선배가 전해준 책자를 받아들고는 별스런 책도 있구나 싶었다.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라는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끌었다. 책장을 넘겨보니 ‘말과 운의 관계를 알면 인생이 바뀐다.’로 시작되었다. ‘대화법을 바꾸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바꾸기만 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읽을수록 흥미진진하고 구구절절 귀감()이 되었다. 좀 더 젊어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꼭 있어야할 사람’  ‘있으나마나한 사람’ ‘없어야할 사람’이다.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난 인생, ‘꼭 있어야할 사람’은 아니어도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한 것일까? 어쩌면 그냥 어울려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이려니 싶었다. 책을 전해주던 J선배의 기억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해마다 설, 추석명절이면 출근부에 도장을 찍지 않던 경비원, 청소부, 구두닦이, 식당아줌마들을 먼저 챙겼다. 그뿐 아니었다. 전주상산고등학교 결손가정학생 두 명을 선정하여 졸업할 때까지 돕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희수(喜)가 눈앞인데도 항상 낮은 자세로 남을 배려하고 있으니, 그를 본받아 마땅하리라.  

         

  말 잘하는 사람을 청산유수(靑山)라고 한다. 사람들은 막힘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그 사람의 말솜씨에 감동한다. 이 책의 저자 ‘마야모토 마유미’는 말할 때 중요한 건 유창함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잘 전달해야 된다고 했다. 상대방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론을 먼저 말하고 해설은 나중에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지 않는가. 말은 많지 않아도 밝은 표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아, 그래요?’ 그렇군요? 하면서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했다. 특히, 상대에게 호감을 얻으려면 마음에 거슬리는 언행을 삼가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을 험담이나 독설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말 잘하는 것은 환경이나 학습에 따라 다르겠지만 성격과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 나는 본시 가방 끈이 짧기도 하지만 사회물정을 몰랐다. 남원전매지청(南原專賣支廳)에 첫 발령을 받고 근무할 때였으니까, 1975년도로 기억된다. 전매지청의 잎담배분야 중 큰 행사로는 식재조사(植栽調査), 예상량조사(豫想量調査), 수매(收買)업무를 꼽을 수 있다. 이를 수행하려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그날은 잎담배 예상량조사를 앞두고 현장실습에 나섰는데, 점심을 야외에서 먹게 되었다. 때마침 옆자리에 평소 친근하게 대해주던 K선배가 앉아있었다. 기회는 이때라 싶어서

  K()! 술 한 잔 드실래요?

하며, 몇 차례 술잔을 권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야 이놈아, 네가 몇 살이냐? 네놈이 나하고 벗할 처지냐? 이무럽게 대해주었더니 싸가지가 없구먼, 나쁜 놈 같으니….

생각지 않게 혼쭐이 나고 보니 어안이 벙벙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네다섯 살 윗사람에게는 성() 씨 뒤에 ‘형님’을 붙여 ‘김 형님’ 한다든지, 아니면 이름 뒤에 ‘형’을 붙여 ‘갑동 형’ 이라고 부르면 무난하다고 했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었던 선배에게 ‘K형’이라고 불렀으니, 귀싸대기 맞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형이라고 부르면 무조건 존칭인 줄 알았으니,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나온다.

 

  그 뿐 아니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건배사를 할 때가 있다. 너와 나를 가릴 것 없이 술자리에 들어서면 본인이 건배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어느 날 직장 회식자리에서였다. 본부장이 나더러 건배사를 하라고 했다. 사전준비가 없던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맥주에 거품이 다 빠지고 미적지근해질 때까지 말을 늘어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직원들은 나를 어떻게 보았을까?  분명히 ‘저런 얼간이 같은 놈!’이라고 했으리라. 두서없이 지껄이는 말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건배사도 그렇지만 어느 곳에서나 말은 짧으면서도 메시지만 분명하면 만점이려니 싶다.              

 

  이 책의 저자 ‘마야모토 마유미’는 상대와 대화할 때 ‘말 끊어 먹지 말기’, 같은 자리에 없는 사람 ‘험담 늘어놓지 않기’, 한자리에서 ‘중언부언 하지말기’ 등을 강조하고 있다. 대화는 조물주가 인간에게만 허락해준 훌륭한 능력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던가. 즐겁고 긍정적인 대화는 웃는 얼굴에서 나온다. 상대방을 기분 상하지 않게 말하는 것도 ‘운()을 부르는 부자의 말투’이지 싶다.    

 

                                 (2019.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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