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2019.03.31 06:06

김재원 조회 수:4

청바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재원

 

 

 

 

  누구나 옷차림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큰애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우리 내외가 어느 지인의 집에 가려는데 큰애가 반바지를 입고 나왔다. 나는 “당장 가서 바지 입고와,.그렇지 않으면 오지 말던가….”라고 호통을 친 일이 있었다. 옷차림과 인품은 바늘과 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지를 일부러 찢었는지 속살이 훤히 보이는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요즘 젊은 남녀의 모습을 보면 민망스럽다. 그런 내가 청바지를 입고 나들이를 하게 되다니,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

 

  언젠가 TV에서 청바지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서양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화려하지 않고, 검소하며 서부의 총잡이 영화처럼 멋지게 보였다. 양복차림에 번쩍이는 승용차의 뒷자리에 앉아 무게 잡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둘째아들 집을 방문했던 어느 날, 둘째의 장인과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나보다 두 살 위인 사돈의 옷차림부터 보았다. 고생했다는 말은 아들로부터 진즉 들었지만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순간 나는 아주 “건방지고 버릇없는, 점잖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빈손으로 미국에 와서 성공하기까지 사돈의 ‘삶의 여정’은 한두 편의 책과 영화로는 부족할 인간승리의 드라마였다. 청바지를 입은 사돈의 겉모습만 보고 경솔하게 판단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바지를 사러 가는 날이었다. 여행을 같이 갔던 친구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신이 났다. 매장에서 청바지를 입으라고 설득하는 둘째와 싫다는 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아내는 중간에서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 둘이 둘째의 손을 들어 주었으니 나는 완패하고 말았다. 자식이지만 내 의지대로 살 수 없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 1년이 넘도록 입지 않았다.

 

  청바지는 1830년대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광에서 금을 캐기 위해 질긴 천막용 천으로 작업용 바지를 만들어 입은 것이 청바지의 시초이고,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휴양복과 작업복으로 널리 이용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개량 한복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하듯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세대를 초월하여 청바지를 일상복으로 즐겨 입는 사람들이 많다.

 

  현직에 있을 때는 때와 장소에 따라 예를 갖추기 위하여 거울 앞에서 온갖 패션쇼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청바지를 입는다. 작년 어느 날, 전주노인회 행사장에 가던 날이었다. 입었다 벗었다 몇 번 반복하다가 결국 청바지를 입고 나가게 되었다. 특별히 정장차림까지 할 장소는 아니었지만 끝날 때까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옷의 문화가 시대와 지역, 자연환경, 직업 등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고 있는데 고루한 나의 생각도 바뀌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사돈의 청바지 차림을 이해할 수 있었고, 찢어진 청바지 문화, 젊음의 향기가 좋다. 청바지를 입게 된 지 2년이 되어가지만 멋쩍을 때가 있다. 깊은 마음은 알 수 없지만 “청바지 입으셨네요? 아주 편하고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젊어 보이네요.”라고 먼저 립 서비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 이거면 어때?”라고 혼자 속삭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들이를 하고 있다.

                                             (2019.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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