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친구

2019.04.15 17:19

김순길 조회 수:2

새 친구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 순 길

...

2019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황금돼지해라고 하니 왠지 힘든 삶이 풍요로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든 사람들이 미세먼지로 고통 받지 않고 큰 사건 사고 없는 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 자신에게도 건강한 가운데 매사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짐을 해본다. 한 해의 시작은 이렇게 새로운 희망 속에서 많은 기대와 설렘을 갖게 한다.

그러나 나에겐 새해 초입부터 몸에 이상 신호가 오고 있었다. 작년 여름부터 시나부로 아프던 오른쪽 어깨에 간헐적으로 심한 통증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평소 즐겨하던 골프와 근력운동을 줄여나갔다. 항상 아픈 곳을 초기에 치료하지 않아서 병을 키운다는 아내의 걱정스러운 핀잔을 듣고 나서야 동네한의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몸 상태가 많이 호전된듯하여 평상시와 같이 운동도 하며 지내던 1월의 끝자락,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오른쪽 어깨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일어 저절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몸이 망가지니 마음마저 화가 나고 흐트러져 평상심을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아내의 도움으로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까운 B정형외과 전문병원을 찾았다. 나의 설명을 들은 의사는 먼저 X-RAY, CT촬영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검사 후 촬영사진을 살펴본 의사는 특이점이 없다며 통증완화주사 2대 정도 맞고 나면 괜찮을 것이라며 진료를 마쳤고, 나는 걱정했던 처음과 달리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통증은 더 심해졌다. 다시 B병원을 찾아가 주사를 맞고 진통제를 먹어 보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결국 MRI검사까지 하게 되었다. 의사는 MRI검사 결과를 바로 설명하지 않고 여러 의사들과 오랜 시간 판독하고 나서야 내게 알려주었다. 뼈종양이 의심되니 더욱 세밀한 검사가 필요하므로 상급병원인 J대학병원으로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 동안 고통 속에서 힘겹게 버텨온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먹먹한 마음에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기며 2월의 싸늘한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픈 추억 한 조각이 스쳐 지나갔다.

10여 년 전, 나는 지독한 허리통증으로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해방’ 되고자 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네 인생은 어려움이 찾아올 때 선각자들의 주옥같은 명언으로 고통을 치유하고 삶의 용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때 나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인생의 세 가지 싸움>에서 깊은 울림을 얻고 나약해진 자신을 바로 세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버린 적이 있다.


나를 일깨워준 세 가지 싸움은, ‘자연과 인간의 싸움’, ‘인간과 인간끼리의 싸움’, 끝으로 가장 중요한 ‘자기와 자기와의 싸움’ 이다. ‘인간 최대의 승리는 내가 나를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세월이 흘렀어도 결코 잊혀 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 오늘도 빅토르 위고의 명언을 되뇌며 지친 마음을 달래본다.

설날 연휴가 지나고 예약 일에 J대학병원을 찾았다. 3주간에 걸쳐 정밀검사가 진행되었다. 담당의사인 A교수는 그 동안의 검사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B병원의 소견처럼 종양을 의심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조직검사를 통해 통증의 원인을 확인해야 된다고 했다. 힘든 조직검사가 끝나고 일주일 뒤 나온 검사결과는 다행히도 ‘양성반응’이었다. 종양으로 의심되었던 혹은 물혹이었고, 이 혹이 어깨뼈를 손상시키고 골절까지 일으켜 어깨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했던 것이다. A교수는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위로하며 앞으로 어깨관리와 치료에 힘쓰면서 1개월마다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A교수에 대한 신뢰와 함께 환자를 위하는 따뜻함이 깊게 느껴졌다. 항상 옆에서 지켜주며 나보다 더 마음 졸였을 아내의 얼굴도 모처럼 밝아보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2월의 쌀쌀한 바람마저도 훈풍으로 느껴졌다. 그 동안 나를 염려해주시던 선배들의 지혜로운 말씀이 새롭게 와 닿았다.

“노년에 한두 군데 아프지 않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세. 비록 힘들겠지만, 그냥 친구처럼 지내시게나.”

인생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나는 2013년 뜨거운 여름 영혼과 함께할 길동무 <수필>을 만났다. 세월이 흐른 지금 서기(瑞氣)어린 황금돼지해에 육신과 함께 할 새 친구 <병(病)>을 만났다. 두 친구와 함께 하는 남은 인생, 결코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2019년 희망찬 4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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