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의 성찬식

2019.04.27 07:21

한성덕 조회 수:22

둘만의 성찬식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한성덕

 

 

 

 

  기독교의 핵심 중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인류구원을 위한 죽음이요, 부활은 죽음을 정복하고 살아나신 새 생명의 시작이다. 이 둘이 없으면, 기독교 역시 일반종교와 다를 바 없는 세상종교요, 사람이 만든 사람에 의한 사람의 종교일 따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는, 거짓과 불의에 맞선 진실의 승리요, 증오와 복수를 이겨낸 사랑의 승리며, 인간의 끔직한 죄의 역사를 선의의 역사로, 죽음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 바꿔놓은 반전드라마다. 이로써 예수님은 '사람의 죽고 사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셨다. 사건 중 대사건이요,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이다. 그 최고의 사랑이 십자가상에서 확증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고난과 부활은, 잘 정리된 이론이나 이성적 논리, 고매한 지식이나 오랜 연구, 또는 철학적 논거나 어떤 사상적사고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푸는 열쇠는 오로지 하나, 십자가와 부활을 사실그대로 믿는 믿음뿐이다. 그것이 해답이요, 문제해결의 지시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만찬을 12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날만은 떡()과 포도주에 의미를 부여하신 특별한 자리였다. ()을 떼시며 ‘내 몸’이라 칭하시고, 식후에는 포도주 잔을 나누며 ‘나의 피’라고 하셨다. 특히,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가리켜,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다.

  교회는, 이 마지막 식탁의 ‘만찬’을 일 년에 한 차례 가지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난주일’을 지킨다. 이때, 한 조각의 빵()과 한 잔의 포도주를 나누며 성대한 ‘성찬식’을 치른다. 이어서 이레 동안의 ‘고난주간’에 들어간다. 경건한 마음으로 지내야 하는 아주 특별한 날이요, 한 주간이다.

  이 ‘고난주일’에 목회자는, 하얀 가운에 흰 장갑을 끼고, 피를 상징하는 빨간 후두를 두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엄숙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성스러운 성찬식을 집례한다. 교인들은 각자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 다음, 떡을 떼며 잔을 나누는 성찬식에 동참한다.  

  이런 엄숙한 예식을 나는 단 둘이서 치렀다. 평상복차림의 목회자와 성도 한 사람이다. 작은 방안의 공기마저 초라하게 느껴졌다. 예배당에 있을 강대상은 어디로 갔을까? 목회자의 흰 가운에서 풍기는 성스러움, 빨간 후두에서 보이는 거룩함, 예수님의 살과 피를 대신 나눠주는 진지함이나 예식의 존귀함, 그리고 강대상의 성찬 상이나 어린양 같은 착한모습의 성도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도 두 사람의 몸과 마음에서 느끼는 평안함과 순수함은, 흡사 순결한 천사의 모습이었다.

 

  이는, 다름 아닌 우리부부였다. 조기은퇴 했어도, 목사인 나는 성찬식의 집례자로, 환자인 아내는 성도로 마주앉아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다. ‘십이지장 궤양’으로 입원했는데, 천공 직전까지 갔으니 ‘통증이 얼마나 심했겠냐?’ 며 의사가 혀를 차기도 했다. 그 고통을 지진으로 치자면, 강도7의 통증은 지나가고 여진이 남은 상태다. 성찬식 중에도 아내는 간간히 고통을 호소했다.

  준비해온 빵()을 떼고 포도주(포도즙)를 나누며,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조촐한 시간을 가졌다. 며칠 동안, 링거 외에는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었으니 빵()과 음료는 실상 하나의 요식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성찬식 때보다 더 큰 은혜와 감격이 밀려왔다.

  마무리 기도에 들어갔다. 주님의 십자가고난과 아내의 고통을 언급하자, 주님과 자신이 엮어졌는지 눈물샘이 터졌다. 기도를 중단한 채 나도 덩달아 울었다. 그 짧은 시간에 아내와 살아 온 나날들이 아른거렸다. 간신히 기도를 마치고, 서로를 보다가 눈물로 범벅된 두 얼굴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내를 덥석 안았다. 몹시 가녀리고 초췌해진 모습에서 뜨거운 눈물이 더했다.

  아픔이 길다 해도 일생에 비하면 고통은 잠깐이요, 죽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숱한 사연들이 쌓이고 또 쌓이는지 모르겠다. 인생여정에서, 심심할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가며, 인생을 그저 재밌게 살아가라는 조물주의 선물(?)이란 말인가?

                                 

                                           (2019.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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