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식이와 난청이의 불편한 동거

2019.05.02 18:10

곽창선 조회 수:5

천식이 난청이와의 불편한 동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 창 선

 

 

 

 

 

 내게는 30년 가까이 함께 해온 괴팍한 천식喘息 이와 난청難聽이라는 불청객들이 있다. 이들은 주인인 내 허락도 없이 불법적으로 침입하여, 내 몸을 짓밟고 할퀴는 만행을 저지른다. 때때로 염치도 없이 환경, 장소, 대상 구분 없이 콜록거리며 격에 맞지 앉는 목소리를 내게 하여 주위를 놀라게 할 때면 나 자신도 모르는 자괴감에 얼굴이 붉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중多衆의 자리에 가게 되면 언제나 소외된 구석자리나 끝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 연유가 이들의 만행으로부터 주위에 피해를 덜 주려는 나의 작은 배려이기도 하다.

 

 한 시절 방황하던 길을 끝내고 새로운 출발을 할 무렵에 잠복했던 편두염이 악화되어 주야를 가리지 않는 기침으로 밤잠을 설칠 때도 많았다. 그러나 도움지기의 지극 정성으로 힘든 고비를 넘기며 치유의 길을 찾아서 크게 말썽을 부리지 앉고 안정을 찾아 가고 있어 다행이다. 이제 약으로 비위만 맞추어 주면 일상생활에 큰 지정은 없다. 그러나 난청이는 이명이나 귀 막힘을 달래줄 도 없고 개선될 여지도 없이 관심만 끌려 하니 항상 조심스럽다.

 

 난청이는 19907월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일어서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서둘러 모내래 R이비인후과에서 돌발성 난청이라는 진단을 받고 J대학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입원수속을 마치고 10층 특실에서 달랑 혼자 투병생활이 시작되니, 주치의가 정해지고 간호사들의 피 뽑기, 혈압체크, 심전도 등 무서운 통과의례를 거치고 나니, 팔에는 링거 네 개가 꼽히고, 침대 맡에는 '면회 사절, 절대 안정'이라고 쓴 패찰을 붙여 놓았다중환자처럼 느껴져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입원 2일 후 아침담당과장이 회진을 마치고 문 밖에서 “내일까지 청력이 회복되지 못하면 90프로 이상 회복되기 어렵다”고 스텝들과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순간 희망을 앗아가는 허무가 엄습했다. 하룻밤을 새우고 아침이 밝았다, 몸 상태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주치의는 또 다른 검사와 아울러 다른 치료 방법을 찾고자 온 몸을 마구 들쑤셨다. 피를 하루 대여섯 번씩 뽑고 소변을 받았다. 무리한 치료를 하다가 목에 혈관 확장제를 잘못 투여하여 눈에 실핏줄이 터져서 여차하면 장님이 될 위기도 겨우 모면했다.

 난청을 퇴치한다고, 정상적인 사람을 먹이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링거만 넷을 메달아 놓으니 생사람 잡기에 알맞았다. 그렇다고 누구하나 자세한 설명도 없고 미안한 내색도 없다치료행위에 의문이 생기니 불안이 엄습했다. 아차하는 생각에 협의 치료를 요구하게 되었다.

협의치료를 요구하고 난 2일 후, 담당 Y과장이 최선을 다했으나 더 이상 치료방법을 찾을 수 없다며 퇴원하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내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많다. 감기를 달고 쏘다녔고, 독가스를 씻지도 않고 술을 마시며, 함성을 지르다 편도에 염증이 생겼고, 약한 청신경에 강한 전자파와 울려대는 광음에 대처하지 못하고 무식한 행동이 누적된 결과라 생각한다.

차츰 장애에 적응하며 지내던 어느 날, 서울 찬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울 A 종합병원에 미국에서 저명한 E N T전문 L박사가 귀국해서 진료한다며 예약을 했으니 연락하면 바로 상경하라는 소식이었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필요한 서류를 챙겨 고속버스에 올랐다. 강남터미널에서 죽마지우가 교통순찰차로 올림픽대로를 지나 잠실 A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교통장애를 피해가며 쾌속 질주로 진료시간에 맞추어 도착할 수 있었으니 친구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쾌적한 의료 환경과 선진화된 의료시스템, 의료진의 따뜻한 친절에 위안이 되었다. 담당선생님께서 가지고 간 서류를 검토하시고 검사할 항목을 정리하신 후 진료계획을 자세히 설명하시고 진료를 시작했다. 1시간이 지나 검사 결과 기적이 아니면 회복 불가능이라고 하셨다.

 

 “수술하면 어떨까요?

친구 남편이 일본에서 수술했다며 아내가 끼어들었다.  

 “다행히 한 쪽 귀는 정상이니 아껴 쓰시면 큰 불편은 없으니, 운명으로” 받아들이세요."

 “눈이 둘인 곳에서는 눈 하나인 사람이 장애인이고, 눈이 하나 있는 곳에서는 둘 가진 사람이 장애인"이라며 실망하는 아내를 다독여 주시는 말씀이 찡하게 내 가슴을 울렸다.

 

 순간 허탈감이 엄습해 왔다. 방황만 하던 인생 허무하게 퇴장해야 하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그동안 불편한 동반자들의 횡포에 횡설수설하고 동문서답하던 내 심정을 남들은 몰랐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불편한 동거를 끝낼 방법이 없으니 달래고 얼러 함께 갈 수밖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정해진 시간에 을 간식처럼 제공하고 휴식도 취하며 함께하고 있다. 이제 불편하거나 고통이 와도 으레 투정으로 알고 지내다 보니 생활화 되었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으니 말이다.

 

 내 삶에 풍요로운 시절도 가고 자랑하고 싶은 욕망도 모두 사라졌다. 생자필멸이다. 바람이 있다면 천식과 난청이가 고된 노을 길에 마지막 불편한 손님이기를 바랄 따름이다.

                                                                            (2019.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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