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6 09:21
'엄마'가 좋아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라는 유대인 속담이 있다. ‘뭐, 그럴 리가 있겠나?’ 하면서도, 어머니의 거룩하고 위대한 헌신에 따른 희생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얼마 전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어머니의 손’이라는 수필을 쓴 적이 있다. 그 먹먹하고 시린 가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에 관한 또 한 편의 시를 만났다.
누구나 세 분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세상을 처음 열어주신 엄마/ 세상을 업어주고 입혀주신 어머니/ 세상을 깨닫게 하고 가르쳐 주시는 어머님// 엄마의 무릎에서 내려오면/ 회초리로 사람 가르치는 어머니가 계시고/ 세상을 얻기 위해 뛰다보면/ 부끄러움과 후회로/ 어머님 영전 앞에 잔 올린다.// 성모 아닌 어머님이/ 세상 어디에 있더냐?/ 기도로 일깨우고/ 눈물로 고통 닦아주신/ 엄마, 어머니, 어머님/ 모두가 거룩한 분이시다.
-김종철의 시, <엄마 어머니 어머님>-
엄마가 한 분이 아니라 세 분이라는 게 아닌가? 억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맞다’는 이유가 묘하다. 그래도 엄마와 어머니와 어머님으로서의 역할론을 말하는 것 같아서 충분히 이해가 되고 퍽 좋아 보였다.
여기 60대 중반의 큰아들이, 90대 중반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엄마’가 좋다. 실제로, 엄마는 주로 어린 아이들이 어머니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앞에서 만큼은 늘 엄마라고 부르며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 그럴 순 없지만, 떼도 써보고, 재롱도 피워보고, 짜증과 투정도 부려보고, 퍼질러 앉아서 엉엉 울어 젖히면 모든 게 채워지는 아이, 잘못이 있어도 용서받고, 실수를 해도 엉덩이 토닥거려주며, 말썽을 피워도 괜찮은 그런 아이로 말이다.
시집 보낸 두 딸의 애비지만,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 부른다. 부전자전이라고 딸들도 우리를 엄마, 또는 아빠라고 부른다. 만약, 어느 날부터 내 딸들이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부른다면 남의 자식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한다면 소름이 끼칠 것 같다. 그러면서도 김종철 시인의 '엄마, 어머니, 어머님'이란 시를 공감하는 게 참 묘하다.
친밀도를 측정할 때,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라는 호칭의 친밀감을 두둔한다. 그렇더라도 내게는 ‘엄마’의 친밀도가 훨씬 더 짙다. 어린아이 때야 누구든지 어머니는 ‘엄마’였지, 누가 어머니나 어머님이라고 부르던가? 그 ‘엄마’라는 호칭에 정이 들고, 습관이 되면서 고착화 되어버렸다.
오늘까지 우리 엄마는, 그 호칭이 유치하다며 ‘어머니’, 또는 ‘어머님’이라 부르라 하신 적이 없다. ‘엄마’라는 호칭에 단 한 번도 이의를 재기하거나 서운해 하신 적이 없다. 나 역시, ‘엄마라고 부르는 게 어떠시냐?’고 물은 적도, 물을 이유도, 묻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자식은 엄마라 불러서 좋고, 엄마는 친근감이 들어 듣기에 편한가 보다.
만약, 누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셋을 고르라면, 하늘(heaven)과 어머니(mother)와 가정(home)이라 하겠다. 하늘은 곧 천국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후의 일이 아닌가? 그러나 좋은 부모와 가정은 현실이다. 그 현실에서 오랜 세월 두고두고 ‘엄마’라 부르고 싶은데, 그럴 날이 얼마나 될까싶어 가슴이 먹먹하고 울적했던 지난밤이었다.
(2019.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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