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오현의 〈아득한 성자

2019.05.30 09:14

박영숙영 조회 수:202

한글 선시(禪詩)의 현대적 활용(5)...한글 선시의 모델을 제시한 조오현의 선시 세계(2)


                                                                                                김형중 (동대부중 교법사)



    조오현의 〈아득한 성자〉에 나타난 선 사상은 다음과 같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아득한 성자〉전문  


〈아득한 성자〉는 심오한 철리(哲理)의 깨달음을 읊은 오도의 세계를 너무도 쉬운 언어로 누구라도 읽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읊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라는 시구는 깨달음 없이는 표현이 불가능한 수사이다. 우리가 백년 천년을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현재 이 순간만을 살아갈 뿐이다. 지나간 시간을 과거라 하고, 아직 오지 않는 시간을 미래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주의 모든 존재는 과거나 미래를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현재만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찰나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무한한 시간인 겁이라는 영원한 시간을 이루는 것이다. 시간은 현재 이 순간 찰나의 연속일 뿐이다. 본래 시간이란 실재가 없다. 다만 인간이 살고 있는 현상계의 사물들이 무상하게 변화할 뿐이다. 인간들은 사물의 변화 모습에 따라 시간이란 관념을 만들어 놓고 마치 시간을 기준으로 세상 만물이 변화하는 것으로 거꾸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하루”라는 시구를 통해서 찰나를 살다가는 인생사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는 무상한 인생에 대한 집착이 없음을 읊은 것이다.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집착이다. 집착은 고통의 근원이다.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는 무상한 인생에 대해 더 미련이나 집착이 없다. 초연한 삶이요, 깨달음의 경지다. 하루살이 떼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시인은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라고 담담히 속내를 밝히고,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라고 노래한다. 범부도 천성도 오직 현재 이 순간만을 살다가 가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하루밖에 못 사는 존재임에도 하루살이는 자신이 되돌아가야 할 시간을 알고 집착을 버리고 마지막 알을 까고 죽는다.


그런 까닭에?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는 위대하다. 만약 알을 까지 않고 죽는다면 하루살이의 인생은 영원히 끝나 버린다. 알을 까고 죽기 때문에 하루살이 인생은 영원히 지속된다. 후회도 미련도 없이 하루를 잘 살다가는 하루살이는 천년을 사는 성자이다. 〈아득한 성자〉의 탁월함은 하찮은 하루살이 벌레에서 부처의 무한한 생명력을 발견했다는 데 있다. 자애심 없이는 볼 수 없는 시력(視力)이다.


그리고 이러한 혜안은 드높은 에스프리의 시력(詩力)으로 표현됐다. 시인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천한 미물인 하루살이가 성자로 보이고, 미처 손 쓸 새도 없이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이 풍파에 바위가 마모돼 사라지는 영겁의 시간과 다르지 않다. 시인은 가장 속된 것을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환치시키고, 찰나의 유한성을 영겁의 영원성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시를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의상대사의〈법성게〉에 나오는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시인의 깨달음이 세상 만물을 끌어안는 화엄의 바다만큼이나 깊기 때문이다. <아득한 성자>는 기존의 오언 한시 형식을 금과옥조로 고수하는 한국 선시문학에 있어서 새로운 시조 형식의 모형을 제시한 본격적인 한글 선시의 전범(典範)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의 돌파요, 창조요, 혁신이다. 〈아지랑이〉에 나타난 선 사상은 다음과 같다.


〈아득한 성자〉가 하루살이의 삶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워준 시라면, 〈아지랑이〉는 실체가 없는 허상인 아지랑이를 쫓아 헤매는 부질없고 어리석은 인생을 읊은 철리시이다. 〈아지랑이〉의 시 전문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 음미해 보자.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아지랑이〉전문   《금강경》에서 공(空)사상을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일체의 모든 현상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고 그림자 같네. 또한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네.” 인생은 구름 같고, 아침 이슬 같고, 꿈과 같다. 실체가 없는 허상을 붙들고 발부둥치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다.〈아지랑이〉는 오도의 세계인 공의 세계를 아지랑이라는 시어를 통해 멋지게 시화하였다. 1연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의 시구는 백 척의 긴 장대 끝에서 한 발을 내딛느냐 마느냐 생사를 걸고 구도 일념으로 임하는 수행자의 자세를 읊고 있다. 2연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의 시구에서는 드디어 백척간두에서 한 보를 내딛는 충천 대장부의 기개를 보이고 있다.


이 시를 살려내는 시어가 ‘낭떠러지’와 ‘절벽’인데 시어가 신선하고 긴장감을 준다. 칡넝쿨을 생명줄 삼아 우물 속에 매달려 있는 나그네에게 밤낮으로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칡넝쿨을 번갈아가면서 갉아먹고 있는 현실은 낭떠러지나 절벽처럼 위태롭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삶이 우리의 인생이다. 수행자의 마음은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한다. 3행 ‘우습다’는 깨달음의 겸손한 표현이다. 인생을 깨닫고 보니 내가 그 동안 실체가 없는 아지랑이를 붙들기 위해서 발버둥친 것이 우습다.


 깨닫고 보니 세상은 허망한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다. 죽음을 등에 지고 벼랑 끝에 서 있는 우리의 인생, 덧없는 재물과 미인, 명예를 ?아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지랑이 인생이요, 허공에 핀 꽃을 찾는 허망한 인생이다. 〈아지랑이〉는 한국 문학사에서 만해에 이어 시조시형에 선시를 도입한, 일반 대중의 곁으로 가깝게 다가간 선구자이다.


선시가 역사적으로 한시와 만나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선시가 한시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은 불문율이다. “죽은 문자로는 결코 살아있는 사상이나 문학을 만들 수 없다.” 는 중국 신문화운동의 선구자 호적(好適) 선생의 선언처럼 우리가 선시의 전통적인 틀과 관념 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 거기에 안주하다가는 우리의 자유스럽고 자연스런 감정과 느낌을 시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려운 문자인 한문의 한계성과 제약성으로는 도저히 우리의 신선하고 활발한 자유롭고 개성 있는 상상의 세계를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한글세대에게 문자와 말이 일치하는 우리글인 한글을 통해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형식의 선시의 창작을 요구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한문을 타국지언(他國之言)으로 보고 국문가사 예찬론을 제창했던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은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설파하였다. 우리가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한글을 통해 창작해야 깨달음의 노래인 선시가 빛을 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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