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거충이가 되고 싶다

2019.06.24 19:20

정근식 조회 수:5

반거충이가 되고 싶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근식

 

 

 

 

 

 농사일을 50년쯤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농사일을 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국민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농사일을 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가까운 형이 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내가 7살 때부터 소를 먹이러 다녔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농사일을 했으니 50년은 된 셈이다.  

 '1만 시간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어느 분야든 성공을 거두려면 1만 시간의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1만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 노력한다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나는 1만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농사일을 해 왔다. 농사 전문가가 될 만큼 시간을 투자했는데 나는 농사짓는 방법을 모른다. 농사 기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방법만 익혔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농사짓는 일 만큼은 반거충이다.

 변명거리는 있다. 농사일만 한 게 아니리, 학교와 직장에도 다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면서 농사일을 거들었고, 졸업 후에는 농번기에는 주말마다 고향에 돌아가서 일을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는 힘든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내가 농사 짓는 일을 할 기회는 없었다. 그 일은 언제나 아버지의 몫이었고, 나는 아버지가 시키는 일만 했다.  

 며칠 전에도 휴가를 얻어서 고향에 가서 일을 했다. 고향집이 사무실에서 30분 거리라 부담이 없다. 관리기로 정신없이 일을 하는데 아버지가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관리기에 비닐피복기를 달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탈탈거리는 관리기 소리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동을 끄고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이유는 밭두둑 때문이었다. 간격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작업한 두둑이 뱀꼬리처럼 꾸불꾸불 굽어 있어 반거충이 티가 났다. 바닥이 고르지 않아 신경을 썼는데도 두둑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버지는 다시 작업을 하라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농사일을 했지만 비닐피복기를 부착한 관리기 운전은 처음이다. 예전 같으면 관리기로 두둑을 만들고 손으로 비닐을 덮었는데, 요즘 농업기술이 발달하여 두둑을 만들면서 비닐 덮는 작업까지 한꺼번에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은 힘들다. 관리기 앞에 비닐피복기가 달려있어 회전하기가 보통 힘드는 게 아니다. 게다가 비닐피복기를 부착한 관리기 운전은 처음이고 관리기 클러치도 잘 작동이 되지 않았다. 힘으로 회전을 해야 했다.

 비닐피복기 덕분에 일을 쉽게 마칠 수 있다. 부모님이 며칠을 해야 할 작업이 한나절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비닐피복기가 부착된 관리기는 이웃집에서 빌려왔다. 고향집에도 관리기는 있지만 낡아 작동이 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농기구를 빌려주는 것이 쉽지않을 터인데, 선뜻 비닐피복기가 부착된 관리기를 내어 준 동네 형이 고맙다. 역시 인심 좋은 고향이다.

 두둑이 끝나고 회전을 한 뒤 멈추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름이 시작되는 들판에는 부모님과 내가 서 있다. 부모님은 내가 만든 두둑의 비닐에 흙을 덮고 있다. 기계로 작업을 해도 완벽하게 비닐이 씌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나란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모습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팔순이 넘으신 두 분의 건강이 좋지 않다. 어머니는 암으로 12년째 고생을 하시고, 아버지는 척추염으로 대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셨다. 다행히 두 분의 건강이 좋아져 일상생활을 하고 계신다. 가끔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을 하실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때마다 부모님의 인생과 나의 인생은 다르다며 나 스스로에게 위로를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질병을 가지고 계시더라도 오늘 정도의 건강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해가 저물 무렵 작업이 끝났다. 넓은 밭에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모두 씌웠다. 이제 마당에서 키우고 있는 콩을 모종만 하면 가을까지는 일이 없다. 가을에 타작만 하면 된다. 모종작업은 힘들지 않는 작업이라 당신들 스스로 하시겠다고 한다. 보름 뒤에 양파 수확이 있으니 주말에 오라고 하셨다.

 

 작업한 관리기를 경운기 뒤 트렁크에 싣고 이웃집으로 출발했다. 탈탈거리는 경운기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잘도 간다. 잠시 뒤 달이 뜰 것이다. 매일 달이 뜨고 지는 것처럼 부모님의 농사일은 올해도 내년에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반거충이가 될 것이다. 농사일만큼은 오래오래 반거충이가 되고 싶다.

                                                                                (2019.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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