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이 필 무렵이면

2019.06.25 05:40

신효선 조회 수:46

목련꽂 필 무렵이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효선

 

 

 

 

 

  엊그제 내린 봄비로 미세먼지도 사라져서 봄 하늘이 어느 때보다 눈부시다. 친구의 카톡이 왔다. 열어보니 목련꽃 영상과 박목월 시가 노래로 흐른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 ~ ~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은 꽃이 핀 다음에 잎이 핀다고 하더니 잎 하나 없는 가지에 꽃망울이 수없이 달려 있다. 희고 깨끗한 자태가 순결함마저 느끼게 하며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순백의 은은한 백목련을 보며 지난 일을 생각해 본다.  

  광주에서 단독주택에 살 때 화단 한쪽에 수령이 오래된 커다란 백목련 나무가 있었다. 4월 이맘때쯤 봄의 발소리가 저만치서 들려 올 때쯤 유난히도 큰 꽃망울과 넓은 꽃잎이 피어날 때면 온 집안이 환해졌다. 꽃은 어느 꽃이든 모두가 예쁘지만 백목련은 내가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다.

  하얀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 외에도 자연애, 연모, 숭고한 정신, 우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목련(木蓮)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란 의미다. 춥고 혹독한 한겨울과 꽃샘추위를 거쳐야만 목련은 꽃을 피우는데, 털옷을 입고 긴 겨울 고독한 시간을 이겨내며 빛나는 꿈의 계절을 기다린다.

  이렇게 따스한 봄햇살에 활짝 핀 하얀 목련꽃을 보노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중학교 시절 하늘나라로 간 둘째언니다. 순백의 꽃잎은 언니의 숨결이 담겨있는 듯 가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순수하고 향내 그윽한 백목련, 달이 뜬 날이면 하늘에 걸린 은은한 등불인 양 빛나는 꽃이 바로 언니의 미소 띈 얼굴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언니는 신우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때 몸이 불편한 언니와 나는 별채에 있는 방을 같이 사용했었다. 언니는 낮에는 혼자서 방에 누워 있었다. 지금 같으면 핸드폰이나 TV로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낼 수가 있었을 텐데, 그때만 해도 아픈 몸으로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었다. 온종일 잠을 자고 저녁이 되면 속이 출출했는지 나에게 간식을 가져다주길 원했다. 겨울이라 밖엔 눈보라가 쳐서 찬바람이 불고 어두워 나가는 게 무섭고 싫었다. 나는 언니가 불러도 누워서 자는척했다.

  병원에 입원도 몇 번 하고 집에서 한방 치료도 했는데,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날 언니는 하늘나라가 좋다고 식구들을 모두 남겨두고 혼자서 먼 길을 가버렸다. 언니가 떠나던 날, 내 방 토방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그것을 사정없이 밟아 깨던 일꾼 아저씨가 무서웠다. 가끔 언니가 생각날 때는 그 일이 나를 괴롭힌다. 50여 년이 지났건만 목련이 필 때면 왜 언니는 나의 가슴을 저미며 생각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언니는 학구열이 강해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의 남아선호사상에 밀려 고등학교에 다니다 그만 중퇴를 하고 말았다. 그게 언제나 마음에 맺혔는지 편물을 배웠지만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여자는 시집 잘 가서 살림 잘하면 된다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집에서 살림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의 병이 되었는가 싶다. 언니는 마음씨가 너무도 착하고 다정한 언니였다.

  단독주택에 살 때 개나리가 피어 봄을 알리고 봄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목련의 향기에서 언니의 향내를 느꼈다. 햇볕 잘 드는 뒤뜰 담장 옆에는 살구꽃이 자태를 뽐낸다. 그곳에 살 때는 그리 좋은 줄을 몰랐는데 세월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생각난다. 오늘 친구가 영상으로 보낸 수십 장의 목련꽃 사진과 함께 노래를 들으며 그때를 회상한다.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몇 십 그루의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시샘이라도 하듯 며칠 전부터 찾아온 꽃샘추위가 목련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희다 못해 푸르름을 간직한 목련, 곱디곱던 은백의 우아한 자태는 어디 가고 누렇고 초라한 모습의 낙화는 인생의 무상함을 보는 것 같아 왠지 가슴이 저려온다.

  활짝 핀 하얀 목련꽃을 보노라면 '봄이 와서 꽃이 핀 게 아니라, 꽃이 피어 봄이 왔다.'고 하는 말이 생각난다. 오늘따라 목련꽃처럼 티 없이 곱고 순수한 소녀의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나 버린 언니에 대한 그리움이 애절하게 밀려온다.  

(2019.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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