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힘

2019.07.19 05:38

한성덕 조회 수:11

여권의 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여권의 힘?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그 힘이 얼마나 센지 거머쥐기만 하면 괴력일 때가 있다. 그 힘은 막강해서 법을 만들고, 법 위의 법을 다스리며, 법 위에서 법을 호령한다. 때로는 법치국가란 말이 허울 좋은 수식어에 불과한 경우가 있다. 당리당략에 따른 치열한 싸움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법망이 촘촘해서 빠져나갈 틈도, 재간도, 능력도 없다. 억울해도 몸 사리고 살아야 한다. 촘촘한 법도 그들의 눈에는 느슨하고 허술하게 보이는지, 아니면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법을 제정하는 건지, 미꾸라지 빠지듯이 요리조리 잘도 헤쳐 나간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큼 알쏭달쏭하다. 그래 놓고 뒤에서는 ‘국민’, 또는 ‘지역구’ 운운한다. 언제부터 국민이나 지역구를 그렇게도 잘 챙겼단 말인가? ‘여권의 힘’은 여야를 떠나 권부에서 느끼는 힘, 특히 ‘여당권(與黨圈)의 힘’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 달 전쯤 되었다. 후배교회에서 주일아침예배를 드렸다. 설교서두에 모 방송국의 ‘이제 만나러 갑시다.’에서 퍼왔다는 영상이 떴다. 북쪽의 아가씨가 사선을 넘어 내려 온 이야기였다. 이제 조금은 안정이 돼 중국을 가는데, 자기 여권(旅卷)을 갖고 해외를 다녀온다는 것을 그렇게도 기뻐했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란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여권에 수록된 글귀를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감격하는 게 아닌가? 우리도, 해외문턱이 높고 여권을 받는 게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웠을 때는 그랬을 것이다. 여권을 받아든 사람들이 얼마나 감격스러워 했을까?

  사실 이따끔 해외여행을 다니지만, 여권에 기록된 문구를 읽어보기나 했던가? 부끄럽지만 한 번도 읽어 본 바 없다. 당당한 자세로 여권을 쑥 내밀고 도장이나 받는 정도였다. 그러고 나면 여권을 잊어버릴까봐 허리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가 들어 올 때나 확인하는 게 여권의 전부였다. 다만, ‘여권을 잊어버리면 큰 일 난다. 여기(여행지)에 남아있어야 한다. 그 경비가 어마어마하다. 나도 책임 못 진다.’는 등, 가이드의 엄포성 말은 듣지만 여권에 기록된 문구는 생각밖이었다.

  후배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온 뒤로, 여권의 앞뒤를 소상하게 살펴보았다. 한 장을 넘겼더니 왼쪽중앙 한 가운데에는 대한민국태극기와 그 둘레를 감싸고 있는 무궁화문양이 보였으며, 바로 밑에는 아주 선명한 글씨로 ‘대한민국’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이런 글귀로 장식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대한민국 외교통상부장관 -

 

  우리 대한민국이 참 대단한 나라가 되었다. 한국전쟁에서 벗어 난지 얼마나 되었는가? 세계 200여 개 국가 중 비자 없이 여권만으로 통행할 수 있는 나라가 188개국이나 된다. 이 수치는 일본(190)과 싱가포르(189)에 이어, 독일 프랑스와 나란히 공동 3위다. 그 중 러시아가 119개국, 중국이 74개국, 북한은 42개국에 불과하다. 그리고 파키스탄이 33개국, 시리아와 소말리야가 32개국,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30개국으로 최하위라는 수치가 나왔다.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146개국이나 많고, 선진국이라는 그 어떤 나라들보다 앞서 있으니 대단하지 않는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국가의 위상과 그 ‘여권의 힘’이 대단한 나라가 되었다. 여권만 가지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보호를 받으며 통행할 수 있고, 모든 편의를 제공받는 당당한 나라가 되었으니 어깨를 으쓱으쓱 할만도 하다.

   북한에서 내려온 아가씨는, 여권()의 이런 힘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그토록 감사하며 감격했을 게 아닌가? 우리 국민 모두가 ‘여권(與圈)의 힘’을 과시하기보다, ‘여권()의 힘’을 감사하며 감격스러워할 때, 기쁨 속에 행복이 깃들지 않을까 싶다.    

                                                 (2019.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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