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우리 부부의 새 출발지

2019.07.25 09:26

정석곤 조회 수:17

내장산, 우리 부부의 새 출발지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장반 정석곤

 

 

 

  나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신랑이 되어 해묵은 일기장과 앨범을 펼쳐놓고 글을 쓰고 있다. 1974418일, 목요일의 일기 첫부분이다.

 날씨는 좋은 편이다. 예정보다 40분 뒤에 부부가 됨을 하나님과 하객들 앞에서 서약했다. 두려움과 희망이 번갈아 일어났다. 결혼은 인생의 새 출발이다. 순창중앙교회 담임 목사님의 주례사는 믿음의 가정, 사랑의 가정, 봉사의 가정이 되어 달라는 권면이었다.

  418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식 날이다. 스물네 살 총각과 세 살 아래인 처녀가 결혼한 지 벌써 45돌이 지났다. 그때는 거의 결혼식 날짜를 일요일에 잡았다. 우리는 일요일이 주일예배를 드리는 날이라 결혼식 날로 잡을 수가 없었다. 토요일도 그렇다. 바로 신혼여행을 출발한다면 다음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받은 날이 목요일인 18일이었다. 23일 신혼여행을 다녀와도 다음 날 주일예배를 드리기가 좋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 집에서 피로연을 베풀었다. 신부네 가족과 친척 그리고 하객도 초대했다. 며칠 전부터 장만한 음식이 푸짐해 피로연의 흥을 돋우었다. 이웃집과 큰외숙 집에서도 손님을 받았다. 피로연이 끝날 때 폐백을 드리고 나니 해는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4시가 훨씬 넘어서야 미리 맞추어 놓은 택시를 타고 신혼여행을 출발했다. 어째서 여행지를 내장산으로 정했을까? 그때는 너무 단순했었다. 이름난 국립공원인데다 순창에서 가까워 편하고, 다녀와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그랬을 게다. 신혼여행을 내장산으로 간 신랑 신부는 우리 말고 얼마나 있었을까?

 택시는 순창에서 정읍으로 가는 지방도로를 달렸다. 행여나 우리 결혼의 즐거움을 깨뜨릴까 봐 천천히 달렸다. 자전거로 1년 반 동안 출·퇴근한 팔덕면 머구리 고개를 넘고 강천산 앞을 지나 구림면을 거쳐 복흥면에 들어섰다. 내장산이 걸쳐 있다는 복흥면을 지나 갈재라고도 부른 새재를 내려갔다. 새재는 길이 급경사인데다 심한 굽이가 많아 조심조심 내려갔다. 왼쪽으로 보인 내장산 전경은 석양 햇볕을 머금고 우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드디어 내장산 속에 자리 잡은 내장산관광호텔에 도착했다. 6시가 조금 넘었다. 호텔은 언제 정문 앞쪽에다 크게 지어 이사했는지 지금은 '내장산탐방안내소'로 바뀌었다. 일부러 작년 가을엔 아내랑 안내소 앞에서 싸간 도시락을 먹고 1층으로 들어가 옛 추억을 생각하며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그때 우리 보금자리는 2층 봉황실이었다. 지배인은 박정희 대통령이 하룻밤 묵고 간 특실이라고 몇 번 자랑했었다. 오른쪽 대형 창문의 커튼을 열면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의 봄철 풍경화를 걸어놓은 것 같았다.

  저녁 식사도 특실답게 진수성찬이었을 텐데, 무얼 먹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내장산으로 둘러싸인 호텔의 밤은 고요해, 우리의 마음도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갖기에 좋았다. 성경을 펴서 두 군데를 읽고 묵상했다. 하나님을 믿으며 서로 순종하고 사랑하길 약속했다. 그리고 찬송을 부르고 우리 인생의 새 출발을 다짐하는 기도를 드렸다.  

  이튿날은 사진을 촬영했다. 지금은 예비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앞두고 날 잡아 사진 촬영한 걸 우리는 그날 한꺼번에 한 것이다. 강아지처럼 사진사를 따라다녔다. 점심을 먹어가면서 호텔 앞, 노란 잔디밭, 일주문, 내장사, 관광객이 오가는 길, 우화정, 시냇물, 호수와 냇물에 놓인 다리, 아름드리 소나무, 벚나무 등을 둘러보았다. 사진사는 자기가 정해준 포터 존에서 시키는 대로 우리가 연기할 때만 사진을 찍어주었다. 신랑은 결혼식 때 입었던 정장 차림인데, 신부는 분홍색의 한복과 양장을 바꿔 입었다. 그때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을 못한 게 후회스러웠다. 사진사는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slide)로도 제작해 주었지만, 한 번도 환등기로 보지 못했다. 슬라이드는 서재 책상 서랍에서 우리가 사는 걸 보고만 있어 미안할 뿐이다.

  해 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연기자가 되고, 사진사는 멋진 추억이 될 사진 작품을 만들었다. 나무들도 자기 몫을 했다. 단풍나무는 생명력 넘치는 연둣빛 잎을 만들며 우리에게 아름다운 인생의 꿈을 만들고 가라고 속삭였다. 하얀 벚꽃은 햇볕을 받아 만발하여 우리의 새 출발을 찬양하며 축하향연을 벌여주는 게 아닌가? 멀리서 소나무, 전나무, 삼나무 등은 자기를 따라 푸름을 간직해 신랑 신부의 처음 사랑이 변치 말라고 부탁한 것 같아 가슴에 닿았다. 봉황실에서 둘째 밤을 보내며 인생 새 출발의 꿈을 더 단단하게 다졌다.

  앨범 속 그때 빛바랜 사진은 세월의 흐름과 삶의 변화를 이야기하곤 했다, 내장산은 내금강이라 불리는 옛 모습을 지니며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보았을 갓이다. 우리 부부의 새 출발지, 내장산이 든든해서라고나 할까? 나는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했다. 아내가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온전히 회복되어 이모작을 살고 있다. 아들 셋은 단란한 가정을 꾸려 손자 다섯과 손녀 둘을 바르게 양육하고 있다. 또 막둥이 며느리는 시월에 내장산 단풍이 한창 물들 때쯤 셋째인 아들을 낳을 예정이다. 내장산은 우리 인생의 새 출발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온 게 틀림없다.

 

                                                                         (2019.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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