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여인들

2019.07.26 06:24

윤근택 조회 수:32

퇴계의 여인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한국은행 발행권 천 원짜리 지폐의 인물은 퇴계 이황이다. 그 초상화 바로아래에는 아주 자잘하게 퇴계 이황(1501-1570)’이라고 적혀 있다. 그분이 당시 평균수명에 비해 이승에서누린 나이’ 70세로 비교적 장수했음을 보여준다. 그처럼 장수한 만큼 살아생전 겪은 일도 남달랐을 터. 그 가운데에서 그분 둘레에서, 그분 생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여인들을 추려서,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과 정보를 공유코자 한다.

 

  1. 모친 춘천 박씨(朴氏)

 

  춘천 박씨는, 퇴계의 부친이 상처(喪妻)를 하여 후처(後妻)로 맞은 분. 퇴계는 춘천 박씨 몸에서 막내로 태어난 분. 춘천 박씨는 슬하에 전처 소생 21녀를 포함한 61녀를 두었는데, 32세가 되던 해 나이 40세의 남편을 여의고, 청상과부가 되었다. ,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되었을 적에 그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박씨 부인은 농사와 양잠을 열심히 하여 자녀들을 양육했다고 한다. 그처럼 가난한 가운데에도 자녀들을 멀리 보내, 공부시키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 부인은 자녀들한테 일렀다. ‘애비 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도록 애쓸 것이며 학문도 학문이지만 몸가짐과 행실을 삼가라고. 그분은 문자(文字)를 익힌 바도 없다고 한다.

  후일 벼슬자리에 오른 퇴계는 말하였다.

  “나한테 가장 영향을 많이 주신 분은 어머니셨어요.”

  그러니 이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박씨 부인에 관해 더 적을 것도 없다.

 

  2. 권씨(權氏) 부인

 

  퇴계는 21세에 김해 허씨 부인과 결혼하였으나, 27세 되던 해에 불행하게도 상처(喪妻)를 하게 된다. 졸지에 홀애비가 된 퇴계.

  퇴계가 30세가 될 무렵, 퇴계가 사는 안동으로, 연산군의 폭정으로(?) 말미암아 누명을 쓰고 귀양 온 문신(文臣) ‘권질(權礩)’이 퇴계의 댁에 오게 된다. 그는 퇴계를 설득하게 된다.

  “자네, 말일세. 나한테 딸아이가 하나 있네. 그 애가 본디는 괜찮았으나, 사화(士禍)로 말미암아 집안이 풍비박산되자 혼쭐을 놓아... . 그러니 가장 믿을 만한 이는 자네뿐이니, 제발 거두어 주게. ”

  그리하여 퇴계는 요즘 흔히 하는 말로, ‘2% 부족한권씨 아가씨를 맞이하게 된다. 퇴계는 30세에 재혼을 했으되, 처녀장가를 든 셈이다.

  그 권씨 부인에 관한 에피소드는 대략 아래 세 개로 요약된다.

  제 1)

  제사상을 차리는데 배 하나가 상에서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권씨 부인은 배를 치마 속에다 얼른 감추었다. 큰동서의 훈계에도 아랑곳하지 않자 퇴계가 대신 사과를 하였다. 조상님들이 개의치 않고 오히려 이뻐하실 거라며. 그런 다음 자기 아내를 가만히 불러 물으니 배가 그리도 먹고 싶더라는 말을 듣고, 배를 손수 깎아 주었다.

  제 2)

  퇴계가 관청에 출근을 하려고 도포를 막 입으려고 하니 해진 곳이 있어, 아내한테 기워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랬더니 권씨부인은 빨간 헝겊으로 덧대 기워 건네주었다. 그러했음에도 퇴계는 아내 마음 다칠세라, 그 도포를 그대로 입고 출근하였다. 많은 이들이 수군댔으나, 퇴계는 둘러대었다.

  “어허, 내 아내는 빨간 색이 귀신을 쫓는다는 걸 알고서 그리 한 걸세.”

  제 3)

  퇴계와 그분 제자들이 붓글씨를 쓰고 있었다. 마침 벼루에 물이 떨어지자, 권씨부인한테 물을 좀 갖다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이에 권씨부인은 물 한 동이를 이고 와서, 그 벼루에 붓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으나, 퇴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권씨부인은 퇴계가 46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떴다.

  ‘여자 복 지지리도 없는 양반 같으니라고!’

 

  3. 두향(杜香)

 

  퇴계는 살아생전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다고 한다. 해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는 거. 이처럼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데... .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한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였던지라, 한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둘째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와 서()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가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두향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서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뿐이다.”

 

  두향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가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퇴계는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때부터 퇴계는 평생토록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한편, 퇴계를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와 자주 갔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퇴계를 그리며 살았다.

  말년에 안동에서 은거를(?) 했던 퇴계. 세상을 떠날 때 퇴계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단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퇴계의 매화시들 가운데에는 이런 것도 한 편 있다.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퇴계의 부음을 접한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간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는데... .

  그때 두향이 퇴계한테 선물했던 매화는, 그 대()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고 한다.

 

  나는 다시 천 원짜리 지폐의 인물 초상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나는 여태껏 그 위인의 사상 등에 관해 깊이 파고든 적도 없다. 하더라도, 그분은 아주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음에도 남 탓 하지 않고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매진했다는 것을. 그러한 과정에는 위에서 소개한 몇 몇 여인들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생각을 잠시 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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