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슬라임 제조자들에게 고하노라

2019.07.26 10:06

김성은 조회 수:20

불량 슬라임 제조자들에게 고하노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어린이들에게 슬라임은 꽤나 매력적인 장난감이다. 쫀득쫀득한 촉감에 파츠라는 갖가지 반짝이를 넣어 자기만의 크런치 슬라임을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색상을 조합하며 근사한 색감을 연출하기도 한다. 내 딸 유주도 슬라임이라면 세 시간 정도는 넉근히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의 소유자다. 관련 유투부방송도 넘쳐난다.

종류도 다양하여 슬라임의 찰기에 따라 지글리 슬라임, 버터 생크림 슬라임, 클리어 슬라임, 퐁당 액괴 등 나는 다 헤아릴 수도 없다. 유주는 직접 슬라임을 만들며 유투버처럼 상냥하게 설명하지만, 내 머리에서는 어떻게 하면 유주의 손에서 슬라임을 떼어 놓을까 하는 조바심만 일렁거린다.

 1년 전에 매스컴을 통해 슬라임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미 슬라임 만들기에 푹 빠져 버린 유주를 힘들게 설득하여 집안에 모든 제품을 내다 버렸다. 하지만 친구집에 갈 때마다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주만 혼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버젓이 1,000원 짜리 불량 슬라임을 아무 제재없이 판다. 슬라임 금단 현상에 시달리던 유주는 급기야 하교길에 몰래 제 손으로 슬라임을 샀다. 강압적으로 아이를 압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나는 무독성 제품을 검색하여 한 개에 10,000원에 육박하는 슬라임을 사 주었다. 그것도 마음이 안 놓여 웬만하면 집에서 가지고 노는 슬라임은 재료를 사주고 직접 만들어 보게도 해봤다.

 물풀, 소다, 쉐이빙 폼 등을 섞어가며 유주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패드를 앞에 세워 놓고 유명 유투버로 빙의하여 자기가 만드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유주가 한바탕 슬라임을 가지고 바풍(바닥 풍선)을 만들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따뜻한 물을 나르고 나면 이게 또 뒷정리가 만만치 않다. 끈적거리는 슬라임 파편들이 어쩔 수 없이 여기저기 묻고 쉐이빙 폼과 파츠 조각들이 매트바닥에서 밟힌다. 잘 세탁되지 않는 슬라임 때문에 버린 옷도 여나문 개는 족히 된다. 이쯤 되면 내가 벌려준 판이었음에도 유주에게 볼멘소리를 쏟아내기 십상이다.

 집에서 이렇게 씨름하는 것도 한계에 닿은 참에 익산 시내에도 우후죽순처럼 슬라임 카페가 생겨났다. 자연 유주는 슬라임 카페를 염원했고, 주말에는 한 번씩 데리고 가서 놀게 해주었다. 학교 앞 문구점이 아닌 슬라임 카페 제품은 다르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두 시간을 놀면 20,000원이 훌쩍 넘는 이용료를 내야 한다. 부모들의 불안을 충분히 짐작한다는 듯 곳곳에 붙어 있는 무해하다는 안내문이 어느 정도 안도감을 준다.

 그런데, 바로 어제 한겨레신문에서 다음의 기사를 보았다.

 “소비자원 조사 결과, 슬라임 20종 가운데 3종에서 허용기준(300/)1.2~2.2배 초과한 붕소가 검출됐다. 붕소는 과다 노출 시 위·장·간 등에 영향을 미치는 유해물질로, 올해부터 용출 허용 기준이 개정 적용됐다. 또다른 제품 1종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논란을 일으킨 사용금지 방부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이 검출됐다. 이들 4개 제품 제조업체는 문제 제품을 폐기하고 판매 중지했다고 소비자원에 알렸다.

 또 일부 부재료에서는 붕소, 유해 중금속 성분 등이 나왔다. 파츠(슬라임에 촉감·색감을 부여하는 장식품) 40종 가운데 13종에서는 허용 기준을 최대 766배 초과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검출됐다. 프탈레이트계 가소제는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국제암연구소에서 발암가능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또 이 가운데 3개 제품은 납 함유량이 허용 기준(300/)1.8~12.1배에 달했고, 1개 제품은 카드뮴 함유량도 허용 기준(75/)2.4배였다. 또 색소 21종 가운데 2종에서도 허용 기준을 각각 1.5, 7배 넘은 붕소가 용출됐다.

 

  1,000원짜리 불량 슬라임이 아닌 고가의 슬라임 카페 판매 제품을 조사한 결과라고 했다화가 났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품을 만들어 파는지 속이 터졌다. 어린이들은 이 나라의 미래가 아니던가? 그런 아이들의 피부에 직접 접촉되는 완구류를 제조하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학교에서 담임교사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게 된다. 문구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떠올리며 문장 부호 하나까지 그야말로 심려를 기울인다. 생활기록부는 법적으로 영구보관 문서이므로 작성자에게 엄중한 책임이 따르기도 하지만, 학생 당사자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증명서라고 생각하면 가볍게 임할 수 없다. 하물며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들의 신체에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유해성 물질을 첨가하는 어른들이라니….

 

  어린 딸 유주에게 진지하게 설명했다. 슬라임에서 무서운 독이 나왔다고, 계속 만지면 암덩어리가 우리 몸을 잡아 먹을 수도 있고, 키가 안 클 수도 있다고….

고맙게도 유주는 순하게 수긍했다. 집에 있는 슬라임을 다시 한 번 몽땅 내다 버렸다. 우리 집을 슬라임 청정구역으로 만들어봐도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 온갖 자극들이 유주를 유혹한다. 유투부 영상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선정적인 문구와 영상을 내 어찌 일일이 차단할 수 있겠냐만, 아무리 돈이 좋아도 어린이들의 깨끗한 영혼을 무참하게 집밟는 행위를 의식 있는 어른들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땅의 어린이는 어른들이 지켜주고 키워주어야 할,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가 아닌가?

                                                                                      (2019.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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