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코타카나발루

2019.07.28 06:06

곽창선 조회 수:5

잊지 못할 코타키나발루

  신아문예대학 수필 창작 수요반 곽창선

 

 

 

 

 20151010일 오후18시쯤 코타키나발루 행 비행기 안에서 일어난 생과 사의 변곡점에서 기사회생한 그날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해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며 어딘가 다녀오자는 아내의 바람으로 여행 계획이 짜여졌다. 먼저 여행지로 서구의 역사 탐방이나 화려하고 모던한 도시의 환락과 쇼핑을 즐기는 여행지를 고려하려다가 마지막으로 피로도 풀며 힐링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여행 상품 중 L관광에서 모집하는 45일 코타키나발루 투어가 우리에게 적당한 곳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동남아의 숨은 파라다이스 코타키나발루는 생각만 해도 선망의 여행지였다. 말레이 반도에서 조금 떨어진 북 보르네오 사바 주에 위치하고 있어 말레이와 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몇 년 전에 보르네오라는 가구 이름으로 더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마치 점을 이은 듯 섬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맑고 아름다운 산호초가 잘 보존된 천혜의 자연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다.

 

 일행들의 들뜬 마음을 달래며 버스에 올라 인천국제공항으로 달렸다. 비행시간에 맞추어 이른 저녁을 먹고 급히 기내에 올랐다. 자리에 앉으려니 왜 그런지 속이 메스껍고 거북했다. 비행기가 이륙하려고 요동치며 솟아오르는 소음과 진동으로 몸이 좌우로 뒤틀리더니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눈을 뜨니 걱정스런 눈빛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3시간 남짓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다. 모두 안도하는 표정들인데 아내가 흐느끼고 있었다. 기내에는 전문가도 없어서 다르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니, 자칫 비행기 안에서 한 많은 세상을 떠날 뻔했다. 원인은 급체였던 것 같았다 

 밤 12시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은 비가 내려서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습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 느낌도 좋았다. 숙소인 수트라하비스에 도착한 뒤 아내는 여장도 풀기 전 목욕물부터 받고 나를 밀어 넣는다. 천근같던 몸이 시원한 탕 속에 들어가니 피로가 밀려와 재대로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나에겐 특별히 가벼운 스프와 영양 죽이 제공되었다. 식사를 마치니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밤새워 비가 내렸다.

 

 가이드가 찾아와 스케줄에 참여할 것이냐고 묻기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08시쯤 호텔 앞에서 버스에 올라 툰쿠 압둘라만 해양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창 밖은 비가 내려 한결 맑고 신선했다. 공원은 마누칸, 마무틱, 사피, 섬들이 있는데 그 중 제일은 사피섬이라고 했다. 모터보트가 뽀얀 포말을 뿜어내며 달리는 상쾌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잠시 보트에 오른 것 같은데 산호섬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섬은 해변 이외는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아름다운 물빛만은 일품이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호핑 투어는 시작되었다. 스노클링 장비를 뒤집어 쓴 아내의 모습은 낯선 외계인 같았다. 바다에 뛰어 들어 열대어와 하얀 산호들과 어울리니 신비하기 이를데 없었다. 인증샷을 하고 낯선 이국인들 틈에 끼어 서툰 헤엄을 치고 물장구도 치며 즐거워하는 아내가 소녀처럼 천진스러웠다. 밝은 모습에서 어제의 불안을 떨친 듯해서 마음이 가벼웠다.

 

 헤엄치며 다가온 아내가 손을 질끈 잡는다. 기구를 벗고 하마터면 과부될 뻔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뭉클함이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당신을 위해 건강하게 살겠다.” 고 다짐했다. 맑고 푸른 망망대해 물빛과 어우러져 영원히 빛나기를 소원했다.

 

  아내는 여기저기 터치는 카메라 불빛과 어울려 포즈를 잡아가며 주위 풍경을 열심히 담았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수년 전 샌프란시스코의 쎈트럴 파크에서 자유 분망한 남미 학생들과 손짓 발짓으로 어울리며, 골든 브리지 주위 야경을 배경으로 남긴 사진은 아내가 자랑하는 소장품이 되였다. 사람들 틈에서 아내의 등을 밀며 같이 즐기려니 아내가 몸을 사린다. 나이 탓인가 싶었다.

 

 물놀이 후 중식 시간에 제공되는 BBQ와 밑반찬 맛이 좋았다.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비취 베드에 누워 남국의 정취에 푹 빠져들어 눈을 감고 말았다. 주위에 늘어진 놀이 기구에 올라도 보고 전동 스쿠터를 타 보지만 힘만 들 뿐 흥미가 없었다. 잠시 후 수상레포츠 시간이었다. 배위에서 낙하산을 타고 하늘 주위를 도는데 두려워서 혼이 났다. 태국이나 필리핀에서 경험했지만 나이 들어서 하려니 긴장이 더 따랐다. 벌써 생각과 행동이 서로 다르니 세월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3층 높이의 타워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뛰어내릴 때는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두려움으로 기억을 살릴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순간의 스릴을 그려낼 수가 없으니 왜 그랬을까 후회스럽다.

 

 물에 젖은 옷을 입은 채 호수에 떠 있는 2인승 배를 저으며 망중한을 즐겼다. 문득 아내에게 수작을 걸었던 40여 년이 흐른 유혹의 말이 떠올랐다. 묘한 웃음을 아내도 눈치 챈 것 같았다. ‘연꽃처럼 아름답다’ 고 추겨 세워 준 말을 기억하나 보다. 덕진연못 흔들다리 위를 걷다가 원앙선을 보며, 망설이는 그녀를 끌다시피 태워 뒤뚱 거리는 배위에서 속삭여 준 말이었다. 이젠 변했다며 구박을 한다. 그런데 시간만 흘렀을 뿐 똑 같은 조건이건만 그 시절에 일었던 눈에 낀 콩깍지는 어디로 가고 흰 머리에 주름진 얼굴 투박한 말씨만 남았으니, 섭섭하지 않을까? 죄지은 마음으로 어깨를 살며시 안아 주었다.

 

 맹글로브는 색다른 경험을 주었다. 맹글로브는 나무 이름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자란다. 씨앗으로 번식하지 않고 50-60cm정도 자란 가지를 떨어뜨려 번식된다. 주변에 맹글로브가 가득해서 맹글로브 강이라 부른다. 강을 거슬러 오르며 수상가옥을 볼 수 있었다.  밤에 맹글로브 숲을 따라 들어가면 어둠속에 빛나는 반딧불을 볼 수 있었다. 큰다리 밑을 지나 칠흙의 강기슭을 거슬러 오르며 별빛처럼 아름다운 반딧불에 전등을 비추며 설명하는 가이드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수트라하비 리조트는 시내에 있어 가이드가 허락이면 시내 관광을 즐길 수가 있었다. 이웃 몇 명이서 사빈 주립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에는 말레이 역사와 문화 등 시중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들의 주거형태와 생활상을 볼 수 있었다. 1985년에 개관된 사바 주의 민가 건축양식인 롱 하우스 형태로 지었다. 크게 하나의 가옥 속에 벽으로 칸을 막고 다수의 가족이 독립된 생계를 영위하면서 지어진 연립주택 형식이었다. 보르네오 민족의 전형적인 주거 형태였다.

                                                                                    (2019.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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