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8 06:03
동창회와 약봉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용덕
고향인 지리산 골짜기에 며칠간 휴식을 취하려고 내려갔었다. 마침 초등학교 동창들이 모임을 갖는다며 참석 여부를 묻기에 참석하겠다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동창회는 서울과 고향 두 군데에 각각 20여 명으로 결성되어 있다. 나는 서울모임에 나가니까 참석 의무는 없지만 오래 만에 만나볼 친구들이 생각나서 참석하고자 한 것이다.
이윽고 만나는 날이 되어 약속 장소에 갔더니 남자가 9명. 여자가 10명이 모였다. 그런데 말하는 것으로는 남자와 여자 구분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서로 존댓말도 안 쓰고 성에 관한 말도 스스럼없이 했다. 역시 70을 넘으니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후안무치가 되었단 말인가? 내 생각으로는 초등학교 동창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격식 없이 놀던 어릴 적 소꿉놀이 친구인 까닭에 순수한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 것 같았다. 그런데 말소리가 커서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절반 가까이 노인성 난청으로 잘 들리지 않으니까 소리를 크게 할 수 박에 없었던 것이다.
대화 내용은 옛날 굶주린 시절 이야기가 대부분으로 인정 많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웃으로, 명절이나 제사 때는 돌담 위로 떡과 전 등을 주고받았었다. 지금은 아파트의 경우 몇 년이 되어도 앞집과 서로 모르고 지내는 단절된 이웃이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부러워했던 우리의 대가족제도가 무너짐으로써 누구나 갈 것이라고 체념하고 사는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으로 여긴다. 그리고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에 빠져 돈을 어떤 것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이 되었다. 대충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렇다고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해진 옷과 구멍 난 양말을 호롱불 밑에서 밤새 기워, 아침에 입혀주고 신겨주셨던 어머니의 정성은 찾을 길 없다. 소풍날 어머니께서 달걀 프라이를 도시락에 얹어 사이다 한 병과 함께 보자기에 싸 주시던 모습은 온데간데가 없다. 돈이면 새 양말, 맞춤 도시락과 그 외의 것들도 해결되는 오늘날엔 비록 가난했을지언정 정이 넘쳤던 그 옛날 일들이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모임이 끝나 집에 가려고 일어설 무렵 누군가가 “약 먹게 물 좀 줘!”라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약봉지를 챙겨 약을 먹는다, 거의 모두가 약을 먹는 것을 보고, 역시 모두 늙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옛날 동안(童顏)은 어디 두고 주름살 만 늘고, 허리도 굽고, 귀도 먹고, 치아도 부실하고, 눈도 침침하고, 혈압, 당뇨, 전립선 등 종합병원 같은 몸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올 때는, 왠지 발길이 무겁고 서글퍼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2019. 7. 26.)
* 노인 수칙
일: 일 만 하지 말고
이: 이 것 저 것 따지지 말고
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러 다니고
사: 사생결단 낼 것처럼 분노하지 말고
오: 오케이를 많이 하는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육: 육체적 스킨십을 즐기고
칠: 칠십 퍼센트면 만족하고
팔: 팔팔하게 운동을 하고
구: 구차한 변명은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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